EU “국제법에 대한 노골적 위반”...미국 등 서방 대(對)러 제재 착수
바이든, 분리독립 지역에 미국인 신규 투자·무역 금지 즉각 행정명령
대대적 금융제재·수출통제 관측...삼성 등 한국기업 여파 여부 주목
우크라아나가 일촉즉발의 전운에 휩싸였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지역의 분리독립을 일방적으로 승인하고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러시아군을 파병하라고 국방장관에 지시했다.
러시아는 2014년 남부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동부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을 주둔시킴으로써 우크라이나 정부와 미국 등 서방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8년 전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합병했던 수순이 이번 돈바스의 진행 경과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합병 수순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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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하고 있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있는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아울러 DPR, LPR 지도자들과 우호·협력·원조에 관한 조약도 맺었다. 러시아 관영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궁)에서 친러파 지도자들과 이같은 상호 지원협정에 서명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푸틴 대통령은 서명 후 몇시간 뒤 자국 국방장관에게 이들 두 공화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라고 지시하면서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군 배치를 공식화했다.
그는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역사의 핵심적인 부분이며 동부는 러시아의 옛 영토”라며 국민이 자신의 결정을 지지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이에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통화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독립승인 결정을 통보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과 숄츠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 대해 “실망을 표명”했지만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는 의향도 나타냈다고 통신은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푸틴 대통령의 지시 뒤 이례적으로 긴 군사장비 행렬이 도네츠크를 지나 이동하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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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접경국 벨라루스의 서남부 도시 브레스트 인근 훈련장에서 러시아와 벨라루스군이 탱크를 동원해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다. [벨라루스 국방부 제공 영상 캡처=브레스트 AFP/연합뉴스] |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파 지역에는 수십 만 명의 러시아 국적 보유자가 살고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독립을 승인함에 따라, 러시아는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언제든지 우크라이나 개입을 정당화하고 군대를 진주시킬 조건을 갖춘 셈이다.
이럴 경우 우크라이나는 해당 영토를 포기하거나 압도적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와 맞서 전쟁을 벌여야 한다.
이같은 푸틴의 전격적인 분리독립 승인과 파병조치와 관련, 블로드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새벽 대국민 연설을 통해 주권침해라고 반발했다.
그는 러시아가 평화협정을 무력화시켰다고 비난하며 “러시아가 어떤 성명을 내든 우크라이나의 국경은 그대로일 것”이라며 영토에 대한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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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결성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지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 및 무역, 금융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평화와 외교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한편, 동맹국이 러시아에 대해 “명확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강구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긴급정상회담 개최도 요청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성향 지역에 대한 분리독립 승인과 러시아군 진입 지시와 관련,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명백한 주권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고 제재에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할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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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안보리 이사국 대표들이 21일(현지시간)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긴급회의를 열고 있다. 이번달 안보리 의장국인 러시아는 비공개 회의를 원했으나, 미국의 주장으로 공개 회의로 결정됐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지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 및 무역을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은 푸틴 대통령이 분리독립을 승인한 당일 일사천리로 이뤄졌으며 22일엔 추가 제재로 발표될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러시아의 돈바스 침공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태가 한층 악화할 경우 그간 서방이 공언해온 ‘전례 없는 수준의 가혹한 제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 그 제재 내용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분리독립 승인을 ‘국제법에 대한 노골적 위반’으로 규정하고서 제재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서방은 대대적 금융제재와 수출통제 방안을 조율해왔다.
미국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우크라이나 침공 시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 제재도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걸 보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첨단기술 등에 대한 수출통제도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출통제가 단행되면 러시아는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와 컴퓨터, 자동차, 가전, 통신장비 등 광범위한 품목을 수입할 수 없게 돼 러시아의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미 미국은 유럽은 물론 자국 내 반도체 업계 등과의 조율을 토대로 수출통제 조치를 준비해왔으며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상대로 실시됐던 수출통제 조치가 러시아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럴 경우 삼성 등 한국기업에도 여파가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은 자국 금융기관을 이용한 러시아 금융기관의 국제결제 업무를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유력 카드로 거론돼 왔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은 초기 제재에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의 조율이 쉽지 않아 고강도 제재가 예상보다 약화할 소지가 있다는 예상도 있다.
■ 돈바스 지역, 친우크라-친러시아 성향 갈려 8년간 교전중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와 접한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주를 아울러 일컫는다.
이 지역의 독립 선언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할 당시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규모 시위대에 의해 축출되자 러시아는 주민투표를 근거로 우크라이나 남부의 크림반도 침공을 감행해 강제 병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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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통제 지역인 도네츠크 중심부에서 주민들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도네츠크 AP=연합뉴스] |
이에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주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도 동부 산업 지역을 점령한 뒤 자신들도 독립하겠다며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수립을 선포했다.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 각각 230만 명과 15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들 다수가 러시아 국적자이거나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에 실시한 공식 인구조사에 따르면 크림반도와 도네츠크주 인구 절반 이상이 러시아어가 모국어라고 답했다. 당시 조사에서 분리주의 세력이 점령한 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이 자치권 여부에 상관없이 러시아에 통합되기를 희망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묘사하며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주권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러시아는 구소련권인 우크라이나를 자주적인 '다른 국가'가 아닌 혈연으로 묶인 러시아와 불가분의 관계로 보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관할하는 돈바스 지역에서는 대다수가 친러분리주의 세력에 점령된 지역이 우크라이나로 반환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80만 명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해 이중국적자가 됐으며, 이 때문에 크림반도처럼 합병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국제사회는 두 공화국을 합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우크라이나 영토에 속한다. 하지만 반군 세력은 장악 지역에서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돈바스 지역은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 이를 제압하려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관할하는 지역으로 나뉜 상태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의 산발적 교전이 이어지는 등 8년 동안 저강도 내전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양측의 장기 교전으로 1만4천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삶의 터전을 등진 사람은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출처=연합뉴스·외신종합]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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