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조 현금·중앙일보 인수 놓고 경영간섭 논란…펫푸드 진출까지 요구하며 전방위 공세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가 국내 제과업계 1위 오리온을 새로운 압박 대상으로 삼았다. 오너 일가의 보수체계와 지배구조 문제를 앞세워 경영진을 정면으로 겨냥한 데 이어 인수·합병(M&A) 중단과 신규 사업 진출까지 요구하며 경영 전반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요구 범위가 경영진의 보수와 배당정책을 넘어 기업의 투자 방향과 사업 포트폴리오까지 확대되면서 주주권 행사와 과도한 경영간섭 사이의 경계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오리온이 보유한 2조원대 현금성 자산과 장기간 부진한 주가가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양상이다.
![]() |
| ▲ FCP가 오리온에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사진=AI생성] |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FCP는 이날 오리온 이사회에 5대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서한을 발송하고 오는 11월 13일까지 공식 답변을 요구했다.
FCP가 내세운 요구사항은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선임 또는 무보수 근무 △경영진 보수의 주가 연동 △주주환원 확대 △중앙일보 인수 중단 △펫푸드 사업 진출 등이다.
이번 공세의 첫 번째 표적은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 부부다.
FCP는 두 사람이 2013년 이후 오리온과 오리온홀딩스의 등기이사를 맡지 않으면서도 양사에서 거액의 보수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등기이사가 아닌 만큼 주주총회가 승인하는 이사 보수한도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근거로 FCP는 오너 부부에게 등기이사로 복귀해 경영 책임을 지거나 보수를 받지 않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오너 일가의 경영 책임과 보수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는 주주 감시 기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특정 주주가 경영진의 지위와 보수 지급 방식까지 양자택일 형태로 요구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주주환원 촉구를 넘어선 압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FCP는 국민연금의 과거 의결권 행사 내역도 압박 근거로 제시했다. 오리온 지분 9.1%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이사 보수한도 안건에 네 차례 반대했지만 오너 일가의 지분 영향력에 밀려 반대 의견이 관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반주주와 오너 일가 사이의 수익률 격차도 문제 삼았다.
FCP는 일반주주의 배당수익률이 2.8%에 그치는 반면 담 회장 부부는 보수를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4.9%의 수익률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일반주주의 배당수익률과 오너 일가의 보수를 합산한 실질 수익률은 산정 기준이 달라 직접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가치 저평가 문제도 주요 공격 소재로 등장했다.
FCP에 따르면 오리온의 기업가치 대비 상각전영업이익 배수(EV/EBITDA)는 3.0배로 글로벌 동종업계 중간값인 11.5배에 크게 못 미친다. 이를 근거로 오리온의 기업가치가 내재가치 대비 약 60% 저평가돼 있다고 분석했다.
오리온은 국내 제과시장 점유율 약 22%를 확보하고 매출의 3분의 2가량을 해외에서 거두는 대표적인 K-푸드 기업이다. FCP는 이 같은 사업 경쟁력에도 주가가 9년 동안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순현금과 금융자산이 2조1000억원으로 시가총액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점을 부각하며 보유 자산을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기업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뿐 아니라 생산설비 확충, 해외시장 공략, 신규 사업 투자 등에도 활용되는 재원이다. 주주환원 확대가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현금 활용 방식을 특정 방향으로 압박하는 것이 반드시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에 부합하는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FCP의 요구는 오리온의 M&A 전략으로도 확대됐다.
FCP는 2024년 1월 오리온이 리가켐바이오에 5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발표한 다음 날 주가가 18% 급락한 사례를 거론했다. 본업과 거리가 있는 바이오 사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결정에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는 주장이다.
최근 보도된 중앙일보 인수전 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FCP는 중앙일보가 올해 상반기에만 약 92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주장하며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에 오리온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현 FCP 대표는 과거 오리온이 온미디어와 베니건스 등 비핵심 사업을 매각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과거 사업 다각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했다.
다만 중앙일보 인수와 관련해서는 오리온의 실제 입찰 참여 여부와 구체적인 투자 조건 등이 확인돼야 한다. M&A는 사업적 타당성과 재무적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경영 판단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투자자가 사전에 인수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대목은 FCP가 새로운 사업 방향까지 제시했다는 점이다.
FCP는 오리온의 신규 성장동력으로 펫푸드 산업 진출을 제안했다. 국내 반려동물 수가 0~4세 영유아 인구의 6배에 달한다는 주장과 함께 글로벌 펫푸드 강자인 마스와 네슬레가 제과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펫푸드는 일반 제과와 소비자층, 제품 개발, 유통구조, 경쟁 환경 등이 다른 시장이다. 오리온의 기존 식품사업 역량을 활용할 여지는 있지만 사업 진출의 타당성은 투자 규모와 수익성, 경쟁력 확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한편으로는 본업과 연관성이 낮다는 이유로 바이오 투자와 언론사 인수 가능성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업 진출을 요구하는 만큼 사업 다각화에 대한 판단 기준이 일관적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FCP는 회사 측의 소통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15일 오리온에 이사회 면담과 주주명부 열람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대응이 처음 겪는 상황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아울러 오리온이 지배구조만 정상화해도 '제2의 삼양'으로 도약할 수 있다며 주가 35만원 달성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다만 주가 35만원은 FCP가 제시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실제 기업가치 상승을 보장하는 수치는 아니다. 글로벌 경쟁사와의 단순한 기업가치 배수 비교 역시 성장성, 사업구조, 투자 규모 등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이번 FCP의 공개서한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주주환원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오리온의 M&A와 신규 사업전략까지 직접적으로 겨냥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주주의 정당한 권리 행사와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주가가 장기간 부진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투자자의 요구를 경영진이 모두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회사 역시 오너 일가의 보수체계와 자본배분 정책에 제기된 의문을 단순한 경영권 간섭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기업가치 제고를 내세운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중장기 경쟁력 강화보다 단기적인 주가 상승과 주주환원에 치우칠 경우 기업의 미래 투자 여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은 오너 중심 경영체제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주주권 행사인지, 기업의 투자와 사업전략까지 관여하려는 경영간섭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FCP가 다음 달 13일을 답변 시한으로 못 박은 가운데 오리온 이사회가 행동주의 펀드의 전방위 요구에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지키면서도 주주들이 제기한 정당한 문제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지가 이번 갈등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