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라인 실명'까지 나왔는데…건보공단 문건 유출 수사 1년째 '멈춤'

사회 / 주영래 기자 / 2026-08-24 08: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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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경찰서 '피의자 특정 곤란' 수사중지…민사소송서 작성·검토·결재자 실명 확인
고발인 재수사 촉구에도 기존 판단 유지…건보공단 "내부자료 유출 사실 없다"부인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내부 수사의뢰서 유출 의혹을 수사해 온 경찰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사를 중지한 뒤, 문건 작성자와 검토·결재권자의 실명이 담긴 새로운 자료가 확보됐음에도 수사를 재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경찰이 수사중지 사유로 들었던 ‘접근 가능자가 지나치게 많아 피의자 특정이 어렵다’는 문제가 민사소송 과정에서 확보된 자료를 통해 상당 부분 좁혀질 여지가 생긴 만큼, 추가적인 사실 확인과 수사 재개 여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새로운 단서가 제시됐음에도 경찰이 별다른 후속 조치에 나서지 않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AI] 

최근 제주에서 불거진 실종 여성 사건의 수사 은폐 의혹과는 사안의 성격과 경위가 다르지만, 새로운 단서가 제시됐음에도 경찰이 별다른 후속 조치에 나서지 않는 모습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4일 메가경제 취재와 고발인 측에 따르면 서울 소재 A병원은 2023년 건보공단의 행정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작성된 수사의뢰서가 언론사와 시민단체 등 외부로 유출됐다며 지난해 원주경찰서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논란은 2024년 한 시민단체가 건보공단 수사의뢰서 내용이 담긴 자료를 공개하고, 같은 해 11월 한 방송사가 A병원 관련 보도를 내놓으면서 불거졌다.

고발인 측은 방송 화면에 등장한 금액과 이후 소송 과정에서 방송사가 법원에 제출한 문서 내용 등이 건보공단 수사의뢰서와 일치한다며 공단 내부 문건이 외부로 흘러나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측 관계자 역시 별도의 민사소송 과정에서 기자회견 이전 내부 제보자를 통해 수사의뢰서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A병원 측은 건보공단 내부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했다면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102조는 공단 종사자 등이 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누설하거나 직무 목적 외로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100여명 접근 가능하다며 수사중지…소송서 나온 ‘결재라인’


그러나 원주경찰서는 수사 착수 약 4개월 뒤인 지난해 10월께 수사를 중지했다. 당시 경찰은 해당 수사의뢰서에 접근할 수 있는 인원과 관련 PC가 각각 100여명·100여대에 달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이를 모두 대상으로 강제수사를 진행하기에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올해 4월이다.

A병원이 진행 중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따라 건보공단이 제출한 수사의뢰서에는 기존 경찰 제출 자료와 달리 문건 작성자와 검토자, 결재권자의 실명과 담당자 연락처가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고발인 측은 이를 토대로 같은 달 원주경찰서에 재수사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해당 의견서에는 수사의뢰서 작성·검토·결재 과정에 참여한 과장·팀장·부장급 관계자와 함께, 민사재판 과정에서 자료 전달자로 거론된 건보공단 직원의 실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인 측은 문건 작성·결재 라인과 전산 접근 기록 등을 대조하면 애초 경찰이 수사중지 사유로 제시했던 광범위한 조사 범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수사규칙도 수사중지 사유가 해소된 경우 수사중지 사건을 다시 수사하도록 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원주경찰서 수사관은 메가경제와의 통화에서 “해당 수사와 관련해 병원측 법률대리인에 설명했으며, 병원측 변호인에 문의하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단서 더 가져왔는데 뭘 더 내야 하나”

하지만 새로운 자료가 제출된 이후에도 원주경찰서가 기존 수사중지 결정을 유지하면서 고발인 측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고발인 측은 “애초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사가 중지됐기 때문에 문건 작성자와 검토·결재 라인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추가로 확보해 제출했다”며 “담당 수사관에게 어떤 자료를 더 제출해야 수사가 재개되는지 문의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도 새로운 단서가 확보됐다면 최소한 관련자 조사와 전산 접근기록 확인 등 추가적인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중지 당시와 비교해 피의자 범위를 좁힐 수 있는 새로운 자료가 확보됐다면 해당 자료가 기존 수사중지 사유를 해소할 정도인지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관련자를 상대로 문건 접근과 전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수사기관이 검토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절차”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고발인은 통신자료 조회나 디지털 포렌식 등 강제수사 권한이 없는 만큼, 상당한 수준의 단서를 제시했다면 이후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영역”이라며 “새로운 단서가 나왔는데도 확인 절차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사중지 제도의 취지를 놓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건보공단은 내부 수사의뢰서 유출 의혹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메가경제와의 통화에서 “해당 사건과 관련해 내부자료가 유출된 사실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A병원은 별도로 건보공단과 소속 직원 5명을 상대로 내부 정보 유출에 따른 손해가 발생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의 쟁점은 실제 유출이 있었는지 여부와 함께, 경찰이 수사중지 이후 새롭게 제출된 단서를 수사 재개의 근거로 볼 것인지로 좁혀지고 있다. 작성·결재 라인이라는 구체적 단서가 등장한 만큼 경찰이 기존의 ‘피의자 특정 곤란’ 판단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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