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키코 분쟁조정위 6개 은행에 255억 배상 결정 이유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는 지나...나머지 피해기업은 자율조정 방침
류수근 기자
webmaster@megaeconomy.co.kr | 2019-12-14 14:03:38
[메가경제 류수근 기자]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키코(KIKO)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시중 6개 은행이 4개 피해기업들에게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 총 255억원이다. 기업별 배상 비율은 각각 15%(2곳), 20%, 41%로 평균 23%였다.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금융위기 시 발생한 통화옵션계약인 이른바 ‘키코’와 관련된 분쟁조정신청에 대해 은행의 불완전판매책임을 인정하고 손해액의 일부를 배상하도록 조정결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조정은 그간 금융행정혁신위원회 권고와 금융위·금감원의 키코 피해기업 지원방안에 따라 지난해 7월 4개 키코 피해기업이 분쟁조정을 신청한 데 따라 이뤄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분조위 조정 대상은 일성하이스코,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기업 4곳과 이들이 가입한 키코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 6곳이다.
4개 업체는 그동안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 절차를 거치지 않아 이번 분쟁조정 대상이 됐다. 이들 업체의 피해액은 모두 1천500억원 정도다.
분조위는 은행등이 피해기업들에 키코를 팔면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위반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며 은행들의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 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분조위의 배상 결정은 강제성이 없어 양측이 모두 받아들여야 효력을 갖는다. 특히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10년)가 이미 지난 상태라 은행이 배상안을 수용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이번 분쟁조정 결정은 지난해 7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면서 금감원이 키코 사건 재조사에 착수한 이후 약 1년 5개월만에 성사됐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으로,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위험 헤지 목적으로 가입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환율이 크게 요동쳐 피해를 당했다.
금감원은 “이번 조정신청은 2013년 9월 2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된 판단기준에 따라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사실조사, 법리검토 등 조정절차를 진행했으며, 이번 조정이 마지막 구제수단인 점 등을 고려해 은행과 피해기업 사이의 간극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배경을 전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키코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이 시중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반환 소송 4건에 대해 키코 계약의 사기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은행 쪽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은행들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인정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자기책임의 원칙은 장외파생상품 거래와 같이 복잡하고 위험성이 높은 거래라고 하여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봤다.
또, “기업이 환 헤지 목적이 아니라 환율변동을 이용하여 환차익을 얻고자 하는 등 투자 내지 투기적 목적으로 통화옵션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그 계약에 내재된 위험성 등을 충분히 고지하여 인식하게 한 이상 그러한 목적의 계약체결을 저지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곧 적합성의 원칙을 위반하고 고객보호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이는 은행이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더 큰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판결했다.
거래상의 주요 정보를 적합한 방법으로 명확하게 설명하여야 할 신의칙상의 의무와 관련해서도, “고객이 이미 그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항에 대하여서까지 금융기관에 설명의무가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이같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은 1000여개 수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외면한 판결”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분조위는 사실조사 내용 등을 바탕으로 심도있는 논의를 거친 결과, 대법원 판결로 키코 사건의 불완전판매 판단기준이 제시되었음에도 은행과 금융감독당국 모두 피해구제 노력이 미흡했으며 소멸시효가 완성된 건이라도 임의변제가 가능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기간 지속된 사회적 갈등 종결을 위해 조정안을 권고해 당사자 간 화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분쟁조정기구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분조위가 조정한 범위는 대법원 판례에서 인정한 부분에 한정됐다. 판례에서 사례별로 인정된 키코 판매 과정의 불완전판매 책임에 대해서만 심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대법원 판례에서 부인된 계약자체의 불공정성 및 사기성 여부는 이번 조정의 심의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덧붙였다.
분조위는 “은행은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금융기관에 비해 더 큰 공신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위험성이 큰 장외파생상품의 거래를 권유할 때에는 더 무거운 고객 보호의무를 부담해야함에도, 판매은행들은 4개 기업과 키코 계약 체결시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타행의 환헤지 계약을 감안하지 아니하고 과도한 규모의 환헤지를 권유?체결(적합성 원칙 위반)했다”고 봤다.
또한, “이에 따른 오버헤지로 환율상승 시 무제한 손실 가능성 등 향후 예상되는 위험성을 기업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던 점(설명의무 위반) 등을 감안할 때 고객보호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분조위는 이같은 판단기준 아래 은행의 고객보호의무 위반 정도와 기업이 통화옵션계약의 위험성 등을 스스로 살폈어야 할 자기책임원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손해배상비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불완전판매 관련 기존 분쟁조정사례에 따라 기본배상비율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적용되는 30%로 하고, 키코 사건 관련 판례상 적용된 과실상계 사유 등 당사자나 계약의 개별 사정을 고려해 가감 조정한 후 최종 배상비율을 산정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산정기준에 따라 분조위는 기업별로 손실액의 15%~41%(평균 23%)를 배상하도록 조정 결정했다.
금감원은 4개 피해기업과 6개 시중은행에 분조위 결정 내용을 조속히 통지해 수락을 권고할 예정이며, 양 당사자가 조정안 접수 후 20일 내에 조정안을 수락하는 경우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은행들은 일단 조정안을 공식적으로 받은 이후 충분한 검토를 통해 배상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이번 분쟁조정 신청기업 이외의 나머지 키코피해 기업에 대해서는, 양 당사자의 수락으로 조정결정이 성립되면 은행과 협의해 피해배상 대상 기업 범위를 확정한 후 자율조정(합의권고) 방식으로 분쟁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에 분조위가 조정한 4개 업체 외에 분쟁 조정을 기다리는 기업은 150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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