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View] 청와대 찾은 기업인들의 쓴소리, 새겨 들어야
류수근 기자
webmaster@megaeconomy.co.kr | 2019-02-07 18:23:28
설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 7일 청와대에선 ‘혁신 벤처기업인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야심만만한 벤처기업인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이 자리가 눈길을 끈 건 그곳에서 나온 대화 내용 때문이었다. 확실히 이날 간담회에서 오간 대화 내용들은 이전 기업인 간담회의 그것과 달랐다. 지난 달 문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청와대 만남에선 듣기 힘들었던 기업인들의 쓴소리가 쏟아져나왔다. 그중엔 청와대 참모들을 당혹스럽게 했음직한, 직설적이고 대담한 내용도 있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앞세워 스스로 창업의 꿈을 이룬 젊은 벤처기업인들답게 이들은 문 대통령에게 거침없는 요구들을 내놓았다. 청와대와 정부의 심기를 자극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 기업인은 기업활동을 억누르는 규제 문제와 그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반기업 정서, 시장경제의 건강성 훼손 문제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국내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경쟁사들이 모두 글로벌 기업”이라며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들에 비해 안방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사례로 망 사용료나 세금 등의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유니콘 기업(자산 가치 1조원 이상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워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부가 각종 규제의 칼을 앞세우며 은연중 반기업 정서를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유니콘 기업이 많이 생기려면 외자 유치가 필요한데 이를 가로막는 것이 불확실성”이라고 질타하듯 말했다. 규제의 범위와 규제 조항에 대한 해석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 불확실성을 키우는 원인이란 진단도 함께 제시했다. 규제를 하더라도 명확하고 일관된 기준과 원칙을 세워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는 또 “한국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을 받아들이는 속도 또한 빨라서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며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다같이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사실상 정부를 향해 시장 흐름에 맞는 대응 능력을 갖춰달라고 요구한 셈이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역시 규제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핀테크는 워낙 규제가 많다 보니 외국 투자자들에게 설명만 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52시간 근무제를 거론하면서 “취지는 알겠지만 급성장 기업에는 또 하나의 규제로 작용한다”며 유연한 정책 운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급진적·경직적 정책 시행의 부작용을 거론한 것이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도 규제 문제를 언급하며 네거티브 규제로의 과감한 전환을 촉구했다. 정부가 큰 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민간은 그 안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기반을 마련해달라는 게 발언의 요지였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는 “다른 나라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강고한 울타리를 만들어 타국 기업이 진입하기 어렵다”고 말한 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어 “정부가 조금 더 스마트해지면 좋겠다”고 직격하듯 말했다.
그의 쓴소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지 않는 시장 환경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듯한 발언도 내놓았다. 그는 “정부의 지원책이 있을 때마다 시장경제를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곤 한다”며 “지원을 하더라도 시장경제의 건강성을 유지시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의 말이 뼈아팠던 듯 청와대의 고민정 부대변인은 추후 기자들에게 김 대표의 쓴소리 대상이 현 정부로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내놓기까지 했다. 이는 그만큼 벤처기업인들의 쓴소리가 적나라하게 표출됐음을 방증하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작심한 듯 쏟아낸 벤처기업인들의 쓴소리를 청와대와 정부가 어떻게 피드백하는가이다. 과거 정부를 함께 걸고넘어지며 방어적 자세를 취하려 하기보다 쓴소리에 담긴 기업인들의 애로와 바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읽어내고 국정 운영에 반영하려는 자세가 우선돼야 하리라는 얘기다. 그것이 정권 스스로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대표필자 편집인 류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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