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사각지대 소상공인 100만 명…‘상생보험’ 실질 안전망 될까
보험업계 300억 원 기금 마련…7개 지자체서 보험료 없이 보장
신용생명·화재·폭염·피싱까지…보험금 청구·지급 실효성 관건
박선영 기자
suny8000@megaeconomy.co.kr | 2026-09-02 18:42:48
[메가경제=박선영 기자] 가게에 불이 나 영업을 멈추거나 질병으로 입원해 며칠씩 문을 닫아야 해도 영세 소상공인이 손실에 대비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대출을 안고 사업을 하다 중대 질병에 걸리면 치료비뿐 아니라 남은 빚까지 부담해야 하고, 폭염으로 일을 하지 못하거나 피싱 피해를 당하는 등 다양한 위험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런 소상공인의 보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사망·질병부터 화재, 휴업, 폭염에 따른 소득 감소, 피싱 피해까지 보장하는 ‘상생보험’이 전국 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본격 가동된다.
보험업계가 조성한 300억 원 규모의 상생기금을 활용해 지역별 소상공인이 영업 과정에서 마주하는 위험을 보험으로 보장하는 방식이다.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없으며, 보험업계는 이번 사업을 통해 약 100만 명의 소상공인이 실제 보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존의 소상공인 금융지원이 대출·보증이나 금리 부담을 낮추는 데 집중됐다면 이번에는 사고가 발생한 뒤 생기는 경제적 손실을 보험으로 떠받치는 안전망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보험사가 실제 위험을 인수하고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일반 보험과 마찬가지로 보험금을 지급한다. 다만 사업의 성패는 ‘보험료 0원’이나 ‘100만 명 수혜’라는 외형적인 숫자보다 실제 보험금 지급으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보험에 가입돼 있더라도 보장 내용을 모르거나 사고 이후 보험금을 제대로 청구하지 못한다면 실질적인 안전망으로 기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수혜 규모와 보험금 청구·지급 실적이 향후 상생보험의 실효성을 가늠할 핵심 지표로 꼽힌다.
2일 금융위원회와 생명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업계는 경남·경북·광주·전남·전북·제주·충북 등 7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상생보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상생보험 사업 140억 원…기금 126억 원 쓰고 174억 원 추가 지원
금융위는 7개 지자체에서 각각 20억 원씩 총 140억 원 규모의 상생보험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7개 지역에서 약 100만 명의 소상공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험업계가 취약계층의 무상보험 가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한 상생기금은 총 300억 원이다.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가 각각 150억 원씩 마련했다.
이번 사업에서는 전체 사업 규모와 보험업계 상생기금에서 실제 투입되는 금액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가 발표한 전체 사업 규모는 140억 원이지만,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이 가운데 보험업계 상생기금에서 실제 투입되는 금액은 126억 원이다. 나머지는 지자체 재원으로 충당되는 구조다.
생명보험 분야에서는 6개 지자체에 지역별 연간 3억 원씩 3년간 지원해 총 54억 원을 투입한다.
손해보험도 6개 지자체에 연간 3억 원씩 3년간 총 54억 원을 투입하고, 전북 손해보험 사업에 18억 원이 별도로 배정된다.
이에 따라 상생기금에서 실제 투입되는 금액은 생명보험 54억 원과 손해보험 72억 원을 합친 총 126억 원이다. 300억 원에서 이를 제외하면 금융위가 발표한 잔여재원 174억 원과 일치한다.
전체 사업 규모와 상생기금 투입액에 차이가 나는 것은 지자체도 사업비 일부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상생보험 사업 공모 당시 지자체 자체 재원을 총사업비의 최소 10% 이상 투입하고 보험업계 상생기금으로 나머지를 지원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당시 선정 지자체에는 3년간 지자체별 18억 원의 상생기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 100만 명은 현재 가입자 아닌 ‘실제 수혜자’ 예상 규모
‘100만 명’이라는 숫자의 의미도 구분해야 한다. 금융위는 상생보험을 통해 7개 지자체 내 약 100만 명의 소상공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100만 명은 단순한 가입 가능 대상자가 아니라 이번 사업을 통해 실제 보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혜자 기준으로 산정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100만 명이 보험 가입을 마쳤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실제 보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규모인 만큼 앞으로 실제 보장 인원이 목표치에 얼마나 근접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신용생명보험은 7곳 중 6곳…사망·중대질병 때 대출 상환
상생보험 사업에는 전국 7개 지자체가 참여하지만 신용생명보험은 전북을 제외한 경남·경북·광주·전남·제주·충북 등 6개 지역에서 제공된다. 전북에서는 손해보험 분야의 상생보험 사업이 운영된다.
경북·광주·전남·제주·충북에서는 지난 1일부터 신용생명보험이 출시됐으며, 경남은 행정 준비 등을 거쳐 10월부터 가입할 수 있다.
신용생명보험은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이 사망하거나 암·뇌출혈·급성심근경색증 등 중대 질병을 진단받았을 때 보험금으로 남아 있는 대출을 상환해주는 상품이다.
해당 지역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가운데 대부업을 제외한 지정 금융회사 대출 보유자나 정책서민금융 이용 차주 등이 가입 대상이다. 소상공인이 보험료를 직접 부담하지 않지만 보험사고 발생과 보험금 지급은 일반 보험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보험에 가입한 피보험자에게 약관에서 정한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일반 보험과 동일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최대 1000만 원 한도에서 보험금이 지급돼 남아 있는 대출 상환에 사용된다. 보험금이 남은 대출 원리금보다 많을 경우 차액은 피보험자에게 지급된다.
신용생명보험 가입자의 금융비용을 낮춰주는 혜택도 제공된다. IBK기업은행 정책금융 이용 시 0.3%포인트의 우대금리가 적용되며, 햇살론 이용자는 첫해 보증료율을 0.3%포인트 낮춰준다.
◊ 보험 보장은 1년·사업은 3년…지역별 가입 방식 달라
개별 보험의 보장기간과 전체 사업기간도 다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신용생명보험의 개별 보장기간은 1년이지만 사업 자체는 3년간 진행된다. 현재 1차년도 사업이 시행 중이며 지자체가 선정하는 대상에 따라 3년까지 가입할 수 있다.
따라서 한 번 가입하면 자동으로 3년간 보장받는 상품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개별 보험은 1년간 보장되고 사업 자체가 3년에 걸쳐 진행되는 구조다.
가입 방식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제주와 충북에서는 사업수행기관이 공고한 뒤 대상자의 개별 가입 신청을 받는다. 경남·경북·광주·전남은 지자체가 가입 대상을 1차로 선별한 뒤 문자메시지(SMS) 등을 통해 가입 가능 사실을 개별 안내한다. 금융위도 신용생명보험 가입 후 보장기간을 1년으로 명시하고 있다.
◊ 경남은 화재, 제주는 폭염, 충북은 피싱…지역 위험 따라 보장
손해보험 분야는 지역별 특성이 더욱 뚜렷하다. 7개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 소상공인이 많이 노출되는 위험을 발굴해 서로 다른 보험상품을 마련했다.
경남에서는 소규모 음식점에서 화재가 발생해 제3자가 사망하거나 장해를 입었을 경우 최대 1억 원까지 배상하는 화재배상책임보험을 선보인다.
경북에서는 소상공인이 질병이나 상해로 입원해 영업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영업이익 손실 등을 하루 5만 원 한도로 보장하는 휴업손해보상보험을 마련한다.
광주는 영업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제3자가 피해를 입으면 최대 3000만 원을 보장하는 영업배상책임보험을 준비했고, 전남은 청년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상해사망과 업무 중 상해 등을 보장하는 소상공인 안심보험을 제공한다.
기후변화와 디지털 범죄처럼 최근 중요성이 커진 위험도 보장 대상에 포함됐다. 제주는 폭염경보로 일을 중단했을 때 발생하는 소득 손실을 보장하는 기후보험을 지난 7월 28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관광·농업 등 야외활동과 관련한 종사자가 많은 지역 특성을 반영한 상품이다.
충북에서는 피싱과 휴대전화 분실에 따른 부당결제 피해 등을 최대 300만 원까지 보장하는 사이버보험을 선보인다.
전북은 지난 6월부터 소상공인의 풍수해보험 가입 때 자기부담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달에는 연매출 3억 원 이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상해위로금과 화재피해 등을 보장하는 종합보험도 출시할 예정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전북 풍수해보험과 제주 기후보험이 먼저 시행됐고 경북·광주·전남·전북·충북 상품은 이달, 경남 상품은 10월 출시된다.
◊ 시민안전보험과 다른 상생보험…소상공인 영업 위험 보장
기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민안전보험과 비교하면 상생보험은 소상공인의 영업활동과 직접 연결된 경제적 위험에 초점을 맞춘다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시민안전보험이 지역 주민의 재난·사고 보장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번 상생보험은 대출을 받은 사업자의 사망·중대질병에 따른 채무 부담부터 휴업손실, 영업배상책임, 화재, 폭염에 따른 작업 중단, 피싱 피해까지 사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세분화했다.
보험료 부담 때문에 영업배상책임이나 휴업손해보험 등 필요한 보험에 별도로 가입하기 어려웠던 영세 소상공인에게 보험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는 대목이다.
◊ 가입돼도 못 받으면 무용지물…보험금 청구 관건
무료보험이 실제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하려면 가입 자체보다 사고 발생 이후 보험금 지급까지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상생보험은 가입자가 직접 보험료를 내고 선택한 일반 보험과 달리 지자체의 대상자 선정이나 지원을 통해 가입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어떤 보험에 가입돼 있고 어떤 사고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면 정작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을 청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사업의 성과를 평가할 때는 단순히 몇 명이 보험의 적용을 받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보험금 청구 건수와 지급 건수, 지급액, 실제 사고 발생 이후 보험금 지급까지 얼마나 연결됐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개인보험이나 지자체 보험과 보장이 겹치는 경우에는 상품별 지급 방식도 확인해야 한다. 약정한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과 실제 발생한 손해를 기준으로 보상하는 손해보험은 중복 가입 시 보험금 지급 방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 300억 원 중 남은 174억 원…다음은 독거노인·고령층
상생보험의 지원 대상은 앞으로 더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300억 원의 상생기금 가운데 이번 사업 등에 사용하고 남는 174억 원을 활용해 독거노인과 고령층 등 그동안 보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취약계층을 추가로 발굴할 방침이다.
무료보험 제공과 같은 금융 지원뿐 아니라 건강관리와 복약지도 등 비금융 지원을 함께 제공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지난 3월에는 잔여재원을 활용해 사업 대상 지자체를 확대하고 치매배상보험 등 상품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번 사업이 애초 전국 단위 확장을 염두에 두고 출발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했고, 이후 지역별 보험 수요와 사업계획 등을 토대로 대상 지자체를 선정했다.
결국 상생보험의 성패는 ‘보험료 0원’이나 ‘100만 명’이라는 외형적인 숫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핵심은 실제로 몇 명이 보험 혜택을 받고, 몇 명이 보험금을 청구했으며, 사고를 당한 소상공인에게 얼마의 보험금이 지급됐느냐다.
보험료 부담 때문에 보장 밖에 머물렀던 소상공인이 사고 이후 실제 보험금을 받아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을 때 상생보험이 일회성 사회공헌을 넘어 실질적인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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