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지원 "농구 통해 얻은 열정과 도전,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
원조 오빠부대 황태자, 시련 극복하며 한국 농구 전성기 견인
천둥처럼 다가온 배우라는 운명, 새해 인생 2막 위한 맹훈련
이동훈 작가
rockrage@naver.com | 2023-12-07 16:12:48
[메가경제=이동훈 작가] 농구 코트 위의 황태자 우지원이 배우로 인생 2막을 연다. 우지원은 블랙홀맨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배우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23년 12월 초 어느 날 모처럼 따사로운 겨울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기분 좋은 바람이 불던 서울 삼성동의 디저트 명소에서 만난 배우 우지원은 전혀 변하지 않는 ‘멋짐’ 그대로였다.
“천둥처럼 배우라는 운명이 내게로 왔습니다.” 우지원은 자신의 인생에 불쑥 뛰어든 연기자로서의 첫걸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떤 조짐도, 예고도, 설렘도, 양해도 없이 천둥이 치듯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그가 운명의 순간을 이토록 간단하게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그의 인생 여정이야말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우지원은 1980년대부터 2010년까지 ‘슈퍼스타’로 불리며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5년 아시아선수권 대회와 1997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농구의 중국 격파의 선봉에 섰다. 프로선수로서도 줄곧 성공 가도를 달리며 은퇴했다.
이 화려한 이면에는 누구 못지않은 노력과 헌신 그리고 역경을 극복하는 자기 희생이 있었다. 우지원은 어린 시절부터 농구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고, 이후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농구 인생은 채 피지도 못하고 끝장날 뻔한 순간도 있었다.
◆ 선수 인생 위기였던 교통사고와 '식스맨' 생활까지, 비온 뒤 땅은 더 굳어져
“초등학교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의사가 이제 농구를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사형선고와도 같았죠.”
누구보다 아파한 것은 가족이었다. 그의 부모님들은 병실에 누운 아들을 품으며, 아들의 생명이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아버지, 어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계셨죠. 그 따뜻한 손길과 말 한마디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어린 소년은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로 휘어진 팔을 참아가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슛을 1000개씩 쏘았다. 소년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그는 슈터로서 명성을 날리며 전희철 선수와 함께 삼선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청소년 대표로도 발탁되었다. 특히 연세대 농구부 시절에는 이상민, 문경은, 서장훈 등 쟁쟁한 동료들과 함께 대학 최초로 93-94 시즌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전성기는 어린 시절처럼 가장 어려운 시기에 찾아왔다.
“2004년부터 거의 벤치 신세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가장 존경하는 선배중 한명인 유재학 감독께서 당시 몸담았던 현대 모비스 감독으로 오시면서였죠.”
한국 농구 사상 손꼽히는 전략가인 유재학, 그는 우지원을 연세대 시절부터 지도했었기에 누구보다 그의 기량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를 시즌 내내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감독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우지원은 식스맨으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래도 가라앉는 자존감과 좌절감,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드는 무력감으로 코트 위를 표류하는 심정이었다. 그는 이 순간이 견디기 힘들어 은퇴를 결심했을 정도였다.
“유재학 감독님이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트레이드 요청도 마찬가지였고요. 그 순간 감독님이 나에게 원하는 역할이 따로 있으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우지원을 내려놓고 차분히 벤치에서 코트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내가 출전을 못하더라도 우리팀 선수들이 잘하면 손뼉을 쳐주고 독려하는 리더로서의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마치 만화 '슬램덩크'에서 채치수가 “가자미가 되어라, 진흙투성이가 되어라”라는 변덕규의 충고를 듣고 플레이를 바꾼 것처럼, 우지원은 코트의 귀공자에서 리바운드 등 몸싸움을 마다치 않는 허슬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유재학 감독님이 제가 깨닫길 바랐던 저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시작한 것이죠.”
이처럼 자신을 내려놓자 잘생기고 실력까지 뛰어난 그를 이유 없이 싫어하던 안티팬들도 그의 팬으로 거듭났다. 또한 중요한 순간마다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러한 우지원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어, 2006-07시즌 마침내 첫 우승 반지를 손에 쥐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유재학 감독과 우지원은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은 역대 KBL 우승 장면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순간중 하나로 꼽힌다.
유재학 감독은 천재적인 용병술로 이름높다. 그리고 그 시작이 우지원이었음이 명백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지원은 유재학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것이다. 현대모비스도 그의 번호 10번을 영구결번하면서 예우를 다했다.
◆ 뮤지컬로 디딘 첫 발, "두렵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겨낼 것"
2023년 우지원은 뮤지컬 배우로서 첫 무대에 올랐다. 배우 박해미의 작품으로 ‘여고동창생’이라는 작품이었다.
“사실 7년 전부터 연기자로서 수업을 받고 있었지만, 운동과 춤은 많이 다르더라구요. 다행히 역할이 ‘농구부 주장’이었고, 박해미 선배께서도 캐릭터랑 자연스럽게 잘 맞을 것 같다라고 응원해주셔 도전하게 됐습니다.”
선수시절부터 항상 묵묵히 겸허한 자세로 노력하는 우지원이었기에, 발전이 빨랐던 모양이다. 박해미는 이후로도 '라비앙로즈', '블루블라인드' 등에 연속해서 우지원을 캐스팅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뮤지컬의 대모가 선수로서의 우지원이 아닌 배우로서의 우지원, 페르소나로서의 우지원을 인정한 순간이다. 사실 우지원은 2020년 MBC드라마 ‘미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도 꾸준히 필모그라피를 쌓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우지원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꾸준한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건 코트 위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대 위 모습이 나와 잘 맞는지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그래도 촬영후 모니터를 통해 조금은 나아지는 내가 있기에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우지원은 내년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위해 맹훈련 중이다. 우지원의 배우 전향은 농구 팬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우지원은 뛰어난 운동 실력뿐만 아니라, 훤칠한 외모와 훈훈한 인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우지원의 배우 전향은 단순히 새로운 도전으로만 볼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우지원 선수는 농구 선수 시절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대한민국에 감동을 안겨준 레전드였다. 따라서 배우로서도 이러한 열정과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우지원은 ‘농구장’을 넘어 ‘연기’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자신의 열정을 펼쳐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새로운 도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을 확신한다. 그가 배우로서도 성공을 거두며 새로운 인생 2막을 열기를 기대한다.
“굉장히 두려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겨낼 것입니다. 그리고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아닌 인정받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