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장비-AI용‧슈퍼컴퓨터 칩 對中 수출통제…삼성·SK 영향에 촉각
中 기업엔 장비수출 사실상 전면금지…AI·슈퍼컴퓨터 칩엔 화훼이식 제재
中 '반도체 굴기' 본격 견제…美상무부 "미국 안보·외교이익 보호"
中공장 둔 삼성‧SK, 영향 제한적이지만 개별심사 부담에 보안 우려도
삼성전자, 정부와 긴밀협의해 대응…하이닉스 "허가확보 만전"
류수근 기자
press@megaeconomy.co.kr | 2022-10-10 14:54:00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고강도의 반도체‧칩 수출 통제 조치를 공식 발표하면서 향후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과 우리 정부의 전략적 대응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일(현지시간)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인공지능(AI) 및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칩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공식 발표했다.
특히 슈퍼컴퓨터용 반도체칩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화웨이식 제재도 포함됐다.
미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고성능 AI(인공지능) 학습용 반도체와 슈퍼컴퓨터용 칩에 대한 수출을 통제하고, 1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 등 특정수준 이상의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기술 판매를 사실상 금지시켰다.
미국이 반도체와 관련해서 개별 기업이 아닌 특정 기술을 기준으로 중국을 겨냥해 포괄적이면서 고강도의 조치를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새로운 통제 조치는 미국 기업이 ▲ 1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nm 내지 14nm) 등을 초과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특정수준 이상의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기술 판매를 사실상 금지시킨 것이다. 특히, 중국 내 생산시설이 중국 기업 소유인 경우에는 이른바 ’거부 추정 원칙‘이 적용돼 수출이 사실상 전면 금지된다. 외국 기업이 소유한 경우에는 개별 심사로 결정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거부 추정'(presumption of denial)이란 규제 대상이나 거래가 미국의 국가 안보를 해치지 않거나 훼손하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강력한 사례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허가 신청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중국 반도체 기업을 현재 기술 수준에서 다 묶어버리는 조치”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미중 간 갈등은 한층 심화하게 됐다.
당장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는 9일 사설에서 “미국이 내놓은 수출 통제 조치는 비(非)미국 기업으로 제한범위를 대폭 확대해 중국과 정상적인 무역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자유무역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시장으로 중국 시장과의 단절은 ‘상업적 자살'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미국의 과학기술 패권주의는 중국에 단기적인 어려움을 줄 수는 있지만, 오히려 중국의 과학기술 자립 의지와 능력을 증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이같은 기술들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 가능하고 인권탄압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댔다. 그러나 최대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를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이번 발표에서 중국에 공장을 둔 외국 기업에 대한 장비 수출은 개별적 심사로 결정하겠다고 밝혔고, 이런 경우 허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이 현재로서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예외를 인정한 셈이지만, 허가 과정에서 별도 심사를 받아야 하는 등 이전보다 까다로워진 절차로 인해 일정 부분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장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개별심사 등 절차적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향후 중국의 반도체 시장 위축에 따른 여파나 미국 정부 심사 과정에서의 기술 유출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이 큰 반도체 소비 시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중국 시장이 위축되면 우리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고, 미국 허가 과정에서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당장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세계 반도체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대비 31.73%나 뒷걸음질 칠 정도로 시장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고,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당장은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우리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7일 공식 입장을 내고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미국으로부터 개별 허가(라이선스)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와 서류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번 조치 발표 이전부터 우리 측과도 긴밀히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차별 논란을 빚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보다는 더 적극적이고 적절한 대응이 이뤄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중국에 대한 첨단 칩 수출이 신규 통제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생각지 못한 불이익에 직면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중국 내 우리 기업에 대한 장비 공급 시 이전보다 까다로워진 절차로 일정 부분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결국, 미국의 반도체 대중 수출 통제 강화가 우리 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정부와 관련 기업은 긴밀한 조율 속에 빈틈없이 대응해 나가야 하는 중대한 과제에 새롭게 직면하게 됐다.
정부가 앞으로 한미 수출통제 워킹그룹 개최 등을 통해 남은 우려를 얼마나 다각적으로 조기에 해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외신 종합>
[메가경제=류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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