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실질가치 17년 만에 최저…중동 전쟁·고유가에 구매력 급락
64개국 중 일본·노르웨이 이어 세 번째로 낮아
수입물가 16.1% 급등…환율도 1500원선 돌파
윤중현 기자
junghyun@megaeconomy.co.kr | 2026-04-26 17:52:04
[메가경제=윤중현 기자] 지난달 중동 전쟁 여파로 원화의 실질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유가 급등과 원/달러 환율 상승이 맞물리면서 교역 과정에서 원화가 지닌 구매력도 주요국 중 최하위권으로 밀렸다.
26일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3월 말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85.44로 집계됐다. 2020년을 100으로 놓고 산출한 수치로, 한 달 전보다 1.57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2009년 3월 79.31 이후 1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화 실질실효환율은 외환위기 당시 68.1,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78.7까지 떨어진 바 있다.
실질실효환율은 특정 통화와의 단순 교환비율을 보여주는 명목 환율과 달리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 가치와 물가 수준까지 반영해 한 나라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수가 100을 넘으면 기준연도인 2020년보다 통화 가치가 고평가된 것으로, 100을 밑돌면 저평가된 것으로 해석한다.
원화 실질실효환율은 2020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00선을 웃돌았지만 이후 달러 강세와 아시아 통화 약세 흐름 속에 90대 중반으로 내려앉았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90대 초반까지 떨어졌고, 지난해 10월 원/달러 환율 급등 이후에는 80대로 밀렸다. 지난달까지 6개월 연속 90선을 밑돌고 있다.
BIS 통계에 포함된 64개국 가운데 지난달 한국보다 실질실효환율이 낮은 국가는 일본과 노르웨이뿐이었다.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66.33, 노르웨이는 72.7을 기록했다. 특히 일본 엔화는 1973년 변동환율제 전환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화 실질 가치 하락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충격과 환율 급등이 꼽힌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6.3% 뛰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00원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이 에너지 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에 압박으로 작용하며 실질실효환율을 떨어트렸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입물가가 급등한 점도 원화 구매력을 끌어내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수입물가지수는 원화 기준 잠정치로 169.38을 기록했다. 전월 145.88보다 16.1% 오른 수치다. 월간 상승률로는 1998년 1월 17.8% 이후 28년2개월 만에 가장 높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수출 가격이 오르고 수입 가격이 내리면 실질 구매력이 커지면서 실질실효환율이 상승한다”며 “지난달에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수입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원화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들어가면서 이달 들어 환율 상승세는 다소 진정됐지만, 중동 정세 불확실성과 고유가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원/달러 환율도 1470~1480원선에서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더라도 원화 강세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백 이코노미스트는 “표면적으로 전쟁이 출구를 찾으면 환율은 단기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면서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작아 환율 하락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반기 평균 환율을 1450원선으로 예상했다.
이 전문위원도 “1460~1470원선에 형성된 달러 실수요가 환율 하단을 막고 있다”며 “미국 인공지능(AI) 산업 성장 기대감이 미국 증시 매력도를 높이는 점도 달러 강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더라도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만큼 하반기 원화 강세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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