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MBC 특집다큐 '불의 끝...그리고 봄', 경북 산불 그 처절했던 30일

화마가 앗아간 삶,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절망에서 핀 인간

이동훈

ldh@megaeconomy.co.kr | 2025-04-29 13:45:51

[메가경제=이동훈 기자] 안동 MBC가 경북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의 30일간의 기록을 담은 특집 다큐멘터리 '불의 끝...그리고 봄'을 30일(수) 오후 6시 5분 방영한다.

 

2025년 경북 지역을 덮친 대규모 산불은 역대급 피해를 남기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재난 현장의 생생한 기록과 함께, 불길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아픔, 그리고 다시 봄을 기다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깊이 있는 울림을 선사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는 화마가 할퀴고 간 처참한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동시에, 소방관, 군인, 자원봉사자,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산불 진화에 나서는 감동적인 순간들을 포착했다. 밤낮없이 이어진 사투, 예측 불가능한 불길의 움직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끈끈한 연대의 모습은 재난의 위기 속에서 빛나는 인간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이번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재난 보도를 넘어, 산불로 인해 삶의 기반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에 깊숙이 다가가 그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강한 의지를 진솔하게 담아냈다. 

 

산불 발생 한 달여 지난 현재, 3,799가구, 6,323명의 이재민들이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불의 시간은 끝났지만, 피해민들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갑작스러운 재앙 앞에 망연자실한 주민들의 모습, 삶의 터전을 재건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 그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따뜻한 마음들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산불로 세상이 멈춘 날


2025년 3월 22일. 경북 일대에는 낯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그 바람 이후,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점심 먹고 한 2시쯤 이후에 바람이 좀 이상한 거예요. 바람이 좀 빠르게 지나가더라고요.
3시 넘어서 보니까 산 쪽 하늘이 검게 변하더니 4시 반경 돼서는 산에 불이 번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 최치원 문학관 _ 김정희 관장 >

경북 안동 의성 김씨 ‘지촌 종택’의 안주인 김영주씨. 3월 24일, 고택 마당에 심은 홍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봄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400년 역사를 이어 온 지촌 종택의 마지막 사진이 될 줄 몰랐다. 의성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은 급속도로 번져갔다.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한 기세로 ‘도깨비불’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산불이 시작된 지 사흘째 되던 늦은 오후, 화마는 안동까지 덮쳤다.

“정말 안일하게 몸만 나갔어요. 내일 집에 들어와서 설거지해야지 하고 나갔어요. 제사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사 음식 그냥 대충 덮어놓고. 정말 20분만 늦게 피했어도 저는 이 산 외길 불길 속에 갇혔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 지촌종택 화재 피해 주민 _ 김영주 >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 중3 큰 아이는 불탄 집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반면 초등학생인 둘째는 피해 조사를 하러 가는 엄마 아빠를 따라나선다.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할 천방지축 아이의 눈에 비친 화재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무너진 기와 더미만 가득 쌓여, 폐허로 변한 그 자리가 불과 며칠 전까지 자신이 살던 집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마당에서는 술래잡기나 그런 놀이 많이 하고.
저기 주방에서는 컴퓨터 하면서 놀고. 레고도 많았는데… (울먹)
제일 아끼는 건 불타기 바로 며칠 전에 샀던 식물이랑, 뽑았던 포켓몬 카드에서 제일 좋은 거요.”
< 초등학교 5학년 _ 김준희 >

◆ 농사꾼의 본능과 한숨의 무게


하루 아침에 이재민이 되었다. 마을에서 고추, 사과 농사를 짓던 신수균씨는 집과 농기계를 모두 잃고 캠핑 시설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다. 지금 그에겐 탈출 당시 입고 있던 옷 한 벌, 손에 든 휴대전화뿐. 쇳덩이도 녹여낸 불길에 호미 한 자루 남지 않았고, 한 포기의 고추 모종도 건지지 못했다. 불은 끝났어도 신수균씨의 일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의 연속이다.

“농사꾼은 호미를 들고, 농기계를 만지며 일을 해야 일상이 돌아가는 건데,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너무 답답합니다. 가끔은 나무에 물이라도 줘야지 하는 본능이 올라오는데.
물통도, 농기계도 다 타버려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날 탈출한 그 상태 그대로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습니다.”
< 농부 (안동시 임동면) _ 신수균 >

대한민국 역대 최대 피해 면적을 기록했다는 경북 산불.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에게 물어야 답을 들을 수 있을지? 그날 자비 없이 불던 바람을 탓해야 할까, 자신의 운 없음을 탓해야 할까. 평소라면 사과꽃이 만발하고 고추 모종이 쑥쑥 자랄 찬란한 봄의 시간. 신수균 씨가 내뱉는 한숨의 무게는 더욱 깊어진다.

◆ 삶은 계속 된다


경북 의성에 자리한 ‘천년 고찰’ 고운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강한 바람을 타고 산불이 빠르게 확산하는 동안 고운사는 귀중한 불교 유물인 ‘성보(聖寶)’를 긴급하게 옮겼다. 그러나 국가지정문화재인 가운루와 연수전 등을 포함한 전각 스물다섯 채는 지켜 내지 못했다. 이번 화마는, 고이 지켜온 천년의 역사도 삼켜버렸다.

“불이 나서 전체가 다 타서 없어졌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풀들이 쑥 올라와서 새롭게 자리 잡기 시작하잖아요.
세상이 흘러가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이게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지만,
사람도 태어나고 또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는 것처럼
자연도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잖아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그게 진리거든요.”
< 의성 고운사 주지_ 등운 스님 >

이제 한 달여 시간이 흘렀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서, 검은 재를 뚫고 올라오는 푸른 싹을 확인한다. 모든 게 불에 타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곳에 아직 살아있는 생명이 숨어있었다. 불이 끝난 시간만큼 키를 높이는 연초록 어린잎이 자연의 회복력을 증명해 보인다. 불과 함께 멈춘 듯 보였던 세상의 시간이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다.

“꽃 보니까 좋긴 한데 서글프죠. 우린 불 나면서 좀 멈춰있는 듯한데,
세상은 변함없이 이렇게 변해가네요.”
< 의성김씨 지촌공파 차종손 _ 김수형 >

이처럼 안동MBC제작진은 '불의 끝...그리고 봄'을 통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번 산불을 통해 얻은 교훈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토록 한다. 재난 발생 시 초기 대응의 중요성, 산불 예방 시스템의 강화, 그리고 피해 주민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 모색 등,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숙제를 제시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진=안동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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