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무비] '대호', 일제 강점기 마지막 울음 그 숨겨진 진실
일제강점기, 호랑이를 멸종시킨 것은 시장 논리
인간의 탐욕이 부른 비극 자연과 공존을 꿈꿔야
이동훈
ldh@megaeconomy.co.kr | 2025-01-07 13:25:50
[메가경제=이동훈 기자] 2014년작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는 일제 강점기,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일본군의 무자비한 사냥으로 인해 호랑이가 사라진다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와 실제 역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영화 ‘대호’는 일제 강점기 호랑이와 그를 쫓는 사냥꾼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은 과거의 영광과 아픔을 뒤로 아들과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일본군과 이들에 고용된 사냥꾼들에 휘말린 아들을 구하려 다시 총을 든다.
영화는 아름다운 지리산의 풍경과 강렬한 호랑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최민식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력은 영화를 단순한 사냥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에서는 일본군의 조직적인 사냥이 호랑이 멸종의 주된 원인인 것처럼 비춘다. 일본군은 호랑이를 사냥해 그 가죽을 전리품으로 삼고, 조선인들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 했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호랑이 멸종의 가장 큰 원인은 일본군의 조직적인 사냥보다는 시장 논리에 따른 무분별한 포획이었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산척, 조선의 사냥꾼’(이희근 지음)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오랜 시간 호랑이에 의한 인명 피해 및 가축 피해 즉 ‘호환’(虎患)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태종실록’(태종 2년, 1402년)에 따르면 “경상도에 호랑이가 많아, 지난해 겨울부터 금년 봄에 이르기까지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이 수백 명이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영조 때도 1개도에서만 1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왔다.
다른 정사 기록들에도 도성 뿐만 아니라 임금이 거주하던 궁궐 안까지 호랑이가 침범하기도 했다. 그만큼 조선은 호랑이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특히 거대한 시베리아 호랑이들이 자주 출몰해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에 전문 사냥꾼 산척, 전문 부대인 착호갑사가 조직될 정도로 호랑이는 조선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동시에 백성들은 호랑이를 해로운 맹수이자 산림을 지배하는 신성한 존재인 산군으로 여기며 숭배와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영화 ‘대호’는 이러한 조선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전성기가 끝난 시점은 대체로 일제 강점기로 알려졌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부터 경찰과 헌병 3321명, 공무원 85명, 사냥꾼 2320명, 몰이꾼 9만 1252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사냥 첫해 호랑이 11마리, 표범 41마리, 두 번째 해인 1916년에는 호랑이 13마리, 표범 95마리를 잡았을 뿐이다. 반면 1915년 멧돼지 1162마리, 노루 6175마리가 희생돼 대조를 이뤘다.
일제에 의한 기록이 아닌, 1882년 미국인 윌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1843~1928) 같은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호랑이들은 영화 ‘대호’에서처럼 일본인이 아닌 쩐(동전의 속어)의 논리에 운명을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강화도 침입으로 발생한 병인양요(1866년, 고종3년) 이후 신식 소총들이 민간 사냥꾼들에게 많이 전파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일제가 ‘총포화약류단속법’을 시행하자, 전국적으로 무기 9만9747점(신식무기 3766점), 화약류 및 탄약류 36만 4377근이 압수됐다. 이는 일제가 임진왜란 이후로 의병군의 주축이자 일제 항거의 선봉장이던 산척 등 총 잘 쏘는 사냥꾼을 뿌리 뽑기 위한 책략의 일환이었다.
개항 직후 원산항에서만 1년동안 거래된 호랑이 가죽이 500장을 넘어섰고, 호환 역시 1883년(고종20년)이후 희생자 수가 급감하다가 1924년부터 9년 동안 호랑이에게 희생된 사망자 수는 단 2명에 불과하게 된다. 참고로 부산항은 1876년, 원산항은 1880년에 개항했다.
호랑이 가죽은 당시 매우 귀한 상품이었다.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호랑이 가죽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호랑이를 무분별하게 사냥했고, 결국 호랑이의 개체 수는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대호’는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일제강점기, 호랑이는 단순한 동물을 넘어 조선인들의 자존심과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일본군은 이러한 상징성을 파괴하고자 호랑이를 사냥했던 것이다. 영화가 간과한 부분은 바로 시장 논리의 맹위이다. 호랑이 멸종의 주된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었고, 이는 시장 논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발생한 비극이다.
영화 ‘대호’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이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