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신창재 의장 “수수료 분급제, 보험산업 정상화시키는 계기될 것”
내년 4년 분급·2029년 7년으로 확대
고객보장 끝까지 책임지는‘농부형’설계사 양성 당부
박선영 기자
suny8000@megaeconomy.co.kr | 2026-08-10 11:14:21
[메가경제=박선영 기자]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 신계약 확보에 치중한 과도한 판매수수료 경쟁으로 생명보험 산업이 ‘머니게임’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법인보험대리점(GA) 설계사까지 ‘1200%룰’이 확대된 데 이어 내년부터 판매수수료 분급제가 시행되는 만큼 보험업계가 판매 중심의 외형 경쟁에서 계약 유지와 고객·주주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보생명은 신 의장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빌딩에서 열린 창립 68주년 기념식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10일 전했다.
신 의장은 이날 보험업계의 과도한 신계약 경쟁을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보험회사들은 가입 고객에 대한 유지서비스는 소홀히 하면서 신계약 매출 실적만을 위해 과도한 수수료·시책 경쟁, 설계사 확보 경쟁을 벌여왔다”며 “그 결과 불완전판매와 승환계약, 고아계약이 양산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험업계의 수수료 경쟁은 오랜 기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보험사와 GA가 신계약을 늘리기 위해 계약 초기에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면 설계사 확보 경쟁이 심해지고 기존 계약을 해지한 뒤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도록 권유하는 부당 승환이나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설계사가 다른 회사로 이동하면서 기존 계약을 관리할 담당자가 사실상 사라지는 ‘고아계약’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보험은 가입 이후 수년에서 수십 년간 유지되는 장기 금융상품인 만큼 계약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보험사의 재무 부담도 문제다. 신계약 확보를 위해 사업비를 과도하게 투입하면 해약환급금 준비금 적립 부담이 커지고 배당 재원이 줄어 기업가치와 주주환원 여력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게 교보생명의 설명이다.
금융당국도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보험 판매수수료 체계를 단계적으로 손질하고 있다.
첫 번째 변화는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된 GA 설계사에 대한 ‘1200%룰’ 확대다. 1200%룰은 보험계약을 판매한 첫해 지급하는 모집수수료를 월납 보험료의 12배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월 보험료가 10만 원인 계약이라면 첫해 지급할 수 있는 모집수수료가 120만 원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보험사 전속 설계사와 보험사가 GA에 지급하는 수수료에는 1200%룰이 적용됐지만 GA가 소속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단계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GA가 월납 보험료의 12배를 웃도는 수수료를 제시하며 설계사를 확보할 수 있어 규제 차익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달부터 이 사각지대가 사라졌다. GA가 소속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초년도 모집수수료에도 동일한 한도가 적용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판매채널 간 규제 차이를 줄이고 과도한 수수료 경쟁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소비자가 보험에 가입할 때 확인할 수 있는 정보도 늘었다. 소속 설계사 500명 이상인 대형 GA는 지난달부터 상품을 비교·설명할 때 판매수수료 수준을 5단계 등급으로 나눠 소비자에게 안내해야 한다.
수수료 등급은 유사 상품 평균과 비교해 ‘매우 높음’부터 ‘매우 낮음’까지 구분한다. 설계사가 추천한 상품 가운데 수수료가 어느 수준인지 소비자가 가입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판매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권유할 유인을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더 큰 변화는 내년부터 시작된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1월 확정한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안에 따라 2027년 1월부터 설계사 판매수수료 분급제가 도입된다. 2027~2028년에는 4년에 걸쳐 수수료를 나눠 지급하고 2029년 1월부터 분급 기간을 최대 7년으로 확대한다.
핵심은 보험을 판매한 시점에 수수료를 집중적으로 지급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계약을 유지·관리하는 기간에도 설계사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판매수수료도 선지급수수료와 유지관리수수료로 구분된다.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대한 보상뿐 아니라 이후 계약을 관리하는 활동에도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구조를 바꾼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을 판매한 설계사가 계약 이후에도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유인이 커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계약 유지율이 높아지고 부당 승환 등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설계사에게는 기회와 부담이 동시에 생긴다. 계약을 장기간 유지하면 유지관리 활동에 따른 수수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어 소득 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지금처럼 계약 초기에 상당 부분을 받던 수입은 줄어들 수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제도 도입 초기 설계사의 소득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과도기 장치도 마련했다. 4년 분급이 적용되는 2027~2028년에는 유지관리수수료 지급 수준을 한시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7년 분급 때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유지관리 관련 재원은 계약체결비용의 67.2% 수준이지만 4년 분급 기간에는 이를 72%까지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보험사와 GA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계약 초기에 높은 수수료를 제시해 설계사를 끌어들이는 방식의 경쟁이 제한되는 대신 설계사가 한 조직에 얼마나 오래 정착하는지, 판매한 보험계약이 얼마나 유지되는지가 영업조직 경쟁력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신 의장이 이날 ‘사냥꾼형’과 ‘농부형’ 설계사를 대비시킨 것도 이런 제도 변화와 맞닿아 있다.
신 의장은 “현장 영업관리자들은 신계약을 많이 가입시키는 ‘사냥꾼형’ 보험설계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생명보험에 대한 니즈를 환기해 완전가입시킨 후 질병이나 사고로 고객이 보험금을 받을 때까지 계약을 유지시키는 ‘농부형’ 설계사를 꾸준히 확보·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설계사 정착률과 보장유지율을 높여 보험 가입에서부터 보험계약 유지, 보험금 지급에 이르기까지 고객보장 완주를 책임질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도 이 같은 영업 방식 전환의 배경으로 꼽았다.
IFRS17에서는 보험계약에서 앞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을 보험계약마진(CSM)으로 잡고 보험기간에 걸쳐 이익으로 인식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신계약을 많이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수익성 있는 계약을 확보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이익 창출에 중요해졌다.
신 의장은 “이제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적자생존’을 넘어 환경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속자생존’의 시대가 됐다”며 “교보생명도 IFRS17 회계제도가 요구하는 고객·주주가치 중심의 가치경영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장이 밝힌 ‘고객보장 완주’를 실제 영업 현장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과제다. 설계사 평가·보상체계에서 신계약 실적보다 정착률과 계약 유지율의 비중을 얼마나 높이는지가 신 의장이 제시한 ‘농부형 설계사’ 전환의 실질적인 척도가 될 수 있다.
신 의장은 생명보험을 다수의 가입자가 ‘이웃사랑’의 마음을 모아 역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금융제도로 정의해왔다.
그는 이번 기념식에서도 판매 경쟁에 치우친 생명보험 산업이 본연의 상부상조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올 7월 시행된 GA 설계사 판매수수료 1200%룰 규제에 이어 내년 1월 시행되는 보험설계사 판매수수료 분급기간 확대는 단기 실적 위주의 폐해를 바로잡고 ‘머니게임’으로 전락한 생명보험 산업을 다시 ‘이웃사랑 이야기’로 되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계를 선도하는 100년 영속 기업, 교보생명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새롭게 각오를 다질 때”라고 강조했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