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X-ray] "값 낮춰 거래성사"…태광 '소비재 진격', 애경 '유동성 탈출'로 '윈윈 빅딜'
인수가 조정 및 SPC 경영 구조로 승부수
경영권 이전 3단계 구조로 리스크 분산
차입 부담 덜고 재무 안정성 ‘숨통’
박제성 기자
js840530@megaeconomy.co.kr | 2026-02-20 11:13:10
[메가경제=박제성 기자] 장기간 평행선을 달리던 태광그룹과 애경그룹의 애경산업 경영권 매각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그간 거래의 최대 변수로 꼽혀온 ‘2080 치약 리콜’ 사태에 따른 인수가 조정 갈등이 막판 절충점을 찾으면서, 한때 제기됐던 거래 무산 우려도 사실상 해소됐다.
이번 딜(거래) 성사로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던 애경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의 전기를 마련했고 태광그룹은 신성장 축 확보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양 그룹은 지난 19일 태광산업이 애경산업 지분 인수 금액을 기존 2350억원에서 2237억원으로 낮췄다. 취득 지분율도 4.98%에서 4.74%로 소폭 줄었다. 취득 예정일은 2월 19일에서 3월 26일로 변경됐다.
이는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거래 조건 재협상을 반영한 결과다.
태광산업은 계약 체결 당시 취득 예정 금액의 10%인 235억원을 이미 지급했으나 매도인이자 애경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 측이 계약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설정했던 ‘주식 근질권(담보)’이 해지되면서 계약 구조가 바뀌었다. 사실상 협상 과정에서 가격과 담보 조건이 다시 조율된 셈이다.
주식 근질권이란 태광산업이 계약금 10%를 지급했는데 AK홀딩스가 약속을 안 지키는 상황을 대비해 안전장치로 설정한 담보를 의미하며, 계약을 어길 시 주식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그런데 양측이 협상 과정에서 조건이 바뀌면서 태광 측이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재협상이 진행됐고 그 결과 기존 계약 조건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 태광 'SPC 경영 구조 승부수', 애경 '유동성 탈출'
이번 거래는 사모펀드(특정 투자자 자금유치)를 활용한 인수 방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태광산업은 트리니티프라이빗에쿼티, 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함께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애경산업의 지분 50% 이상을 확보하는 구조를 택했다.
향후 SPC로 인수 주체가 이전될 예정인데 태광산업은 전략적 투자자(SI) 역할을 수행하면서 재무적 부담을 분산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아울러 AK홀딩스 측도 매각 조건 변경의 폭이 더욱 뚜렷히 나타났다. 지분 처분 금액은 3369억원에서 3196억원으로 줄어 처분 지분율 역시 26.96%에서 26.66%로 낮아졌다.
이는 전체 딜 가격 조정과 연동된 것으로 풀이된다. 양측은 오는 3월 말까지 인수대금 납입을 완료해 거래를 종결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AK홀딩스의 이번 매각이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아닌 재무 안정성 확보를 위한 핵심 과제였던 만큼 최종적으로 매각가 하향 조정이라는 현실적 해법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번 협상은 거래 막판까지 난항을 겪었다. 태광그룹이 최근 불거진 ‘2080 치약 리콜’ 사태를 근거로 인수가 인하와 거래 조건 변경을 요구하면서다.
중국에서 생산돼 국내에 유통된 일부 제품에서 금지 성분이 검출돼 전량 회수 조치가 이뤄지자 태광 측은 브랜드 가치 훼손과 향후 실적 불확실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태광 측은 고수했다.
반면 애경 측은 일시적 이슈일 뿐 기업가치의 본질적 훼손은 아니라며 기존 계약 조건을 유지해야 한다고 맞선 바 있다.
양측의 시각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당초 예정됐던 딜 클로징(거래 마감) 기한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과 함께 협상 결렬 가능성까지 제기된 바 있다.
이번 거래 성사는 애경의 자금 유동성 리스크 해소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애경은 앞서 2025년 8월 골프장 중부CC를 더시에나그룹에 매각해 약 169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는 등 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해왔다.
여기에 이번 애경산업 매각 대금까지 더해지면서 차입 부담 완화와 동시에 재무 안정성 제고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 태광은 미래 샀고 애경은 숨통 텄다…가격 낮춰 완성한 '경영권 빅딜'
태광그룹은 이번 거래가 향후 전략적 승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기존 섬유 등의 석유화학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소비재 영역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특히 생활용품과 화장품을 아우르는 애경산업의 브랜드와 유통망을 활용할 경우 그룹 내 신사업과의 시너지도 기대되는 대목 중 하나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두고 ‘서로 한 발씩 물러선 전형적인 빅 딜 타협 사례’로 평가한다.
인수가는 낮아졌지만 거래 안정성을 확보한 태광그룹, 재무 개선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한 애경그룹 모두 실리를 챙겼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AK홀딩스는 당초 보유 지분 전량을 한꺼번에 매도하는 ‘블록딜’ 형태로 넘기는 구조였지만 계약 변경에 따라 일부 조건이 수정됐다. 특히 매수인인 태광 측과 동일한 SPC 구조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면서 거래 종결 시점과 대금 수령 일정도 함께 늦춰졌다.
이번 거래의 핵심은 ‘경영권 이전을 전제로 한 단계적 인수 구조’다.
단순히 한 회사가 다른 회사 주식을 사는 형태가 아니라 ▲SPC 설립 ▲지분 인수 ▲인수 주체로 이전하는 3단계 구조로 설계됐다.
이런 방식은 대규모 M&A(인수합병)에서 자주 활용되는데 이는 투자 리스크를 분산하고 재무적 투자자(FI)와 전략적 투자자(SI)의 역할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길었지만 양측 모두 거래 성사의 필요성이 컸던 만큼 현실적인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며 "오는 3월 말 잔금 납입이 마무리되면 애경그룹의 유동성 부담 완화 효과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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