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무비] '다음소희'와 LG유플러스 그리고 여고생의 죽음

현장실습생의 숨겨진 고통
사회적 공분과 변화를 이끌다

이동훈

ldh@megaeconomy.co.kr | 2024-03-11 11:14:09

[메가경제=이동훈 기자] 2017년 LG유플러스(대표 황현식) 하청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수연 양이 극심한 근무 강도와 폭언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6년 후,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영화 ‘다음 소희’로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다음 소희’는 2023년 2월 8일 개봉한 영화이다. 영화 ‘도희야’를 연출했던 정주리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주연은 정 감독의 페르소나이자 현재 글로벌 배우로 성장한 배두나(유진 역), ‘오징어게임 시즌2’에 출연하는 신진 연기파 배우 김시은(김소희 역)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 영화 '다음소희'. 2017년 LG유플러스 하청콜센터 현장실습을 하던 홍수연 양읠 죽음을 조명해, 사회적 공분을 이끈 수작이다. [사진=다음 소희 스틸 컷]


◆ 영화 '다음 소희': 현장의 고통, 생생하게 그려내다
 

”나 이제 여직원이다~” 특성화 고등학교 3학년 소희는 담임의 추천에 따라 콜센터 상담으로 취직한다. 그러나 대기업이라는 것은 달콤한 허상일 뿐이었다. 실상은 하청업체 감정노동자로서의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희는 간단한 교육 후 곧바로 업무에 투입됐고 욕설, 성희롱 등 정신적·감정적 착취 그리고 상담원끼리의 무한 경쟁에 시달리게 된다. 이 와중 그나마 그녀가 의지했던 이존호 팀장이 세상을 떠나고 새로 온 팀장은 더욱 직원들과 그녀를 몰아세운다. 결국 그녀 역시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술을 마신 후 홀로 저수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 김소희를 통해 현장실습생들이 겪는 착취와 학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과도한 노동, 낮은 임금, 감정 노동 강요, 폭언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영화 속에서 드러나며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 모두의 거짓말? 자칫 묻힐뻔했던 비극

“아빠, 나 오늘도 콜 수 못채웠어...” 이 영화는 2017년 불과 19살이란 나이에 죽음을 선택한 LG유플러스 하청업체 콜센터에서 일한 고 홍수현 양의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고인은 2016년 8월부터 전북 전주시에 있는 LG유플러스의 콜센터 ‘LB휴넷’에서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계약 해지를 방어하는 ‘세이브(SAVE)팀’에서 현장실습생으로 근무했다. 사실 홍수현 양이 전주의 한 저수지에서 숨친 채 발견됐을 당시만 해도 이 사건은 묻힐뻔했다. 회사가 직원들 입단속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와 교육청은 홍수연 학생의 죽음을 ‘실족사’라고 했다.

또한 하청업체였던 LB휴넷은 고인이 가정불화와 자해이력이 있고, 산재처리가 이뤄지지 않자 유족이 기자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LB휴넷은 LG그룹의 방계일가 지분이 100%인 회사이다. LB휴넷은 2009년 설립부터 구 LG데이콤과 구 LG파워콤 고객센터를 수주하며 기초를 다졌다. 이후 2010년 LG유플러스 장애처리센터, 2011년 LG유플러스 전주고객센터, 2014년 LG전자 A/S 접수센터 등의 하청을 맡으며 폭풍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접한 한 노조 간부의 조사 끝에 수면 위로 떠올랐고, 허환주(프레시안)·문주현(참소리) 기자 등 언론의 집요한 취재, 회사의 태도에 화가난 전현직 직원들이 취재에 응하기 시작하면서 시민사회의 공론화가 일어났고 여론의 공분을 이끌어냈다. 고용노동부도 직접 조사에 나서 위법행위를 적발했다.

◆ ‘다음소희’가 만들어낸 미래


홍수현 양은 생전에 수시로 야근하면서 부모에게 ‘나 오늘도 콜 수 못 채웠어, 늦게 퇴근할 것 같아’라는 문제메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홍수연 양보다 앞서 생을 마감한 한 팀장의 사건도 생생히 전달한다. 이준호 팀장은 유서에 회사의 부당한 시스템을 모두 밝혀 놓았지만, 본사의 실무진은 유족들을 겁박해 합의를 종용한다. 무엇보다 그가 관리자의 직책에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회사는 그를 가해자로 몰아세운다. 현실에서 팀장의 죽음은 2014년에 발생했다.

 

▲ 관계자들의 왜곡된 해명으로 묻힐 뻔했던 사건, 한 취재기자의 열정이 되살린 불씨은 끝내 작은 변화를 이끈다. [사진=네이버 영화]


당시 고용노동부는 이 업체를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겼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하지만 팀장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은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2019년 산재를 인정받게 된다.

이 사건의 처음과 끝을 취재했던 허환주 기자는 “영화속 소희와 현실속 홍수연 학생의 상황이 너무나 비슷했다”고 소회하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제10회 들꽃영화상 각본상(정주리),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김시은)·각본상(정주리)·구찌 임팩트 어워드, 제 45회 랭스 폴라 스릴러 영화제 심사위원상, 제59회 대종상 신인여우상, 제44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제28회 춘사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감독상 등 국내외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게다가 2023년 3월 직장에서 일하는 현장실습생을 보호하기 위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일명 ‘다음소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 원청은 끝까지 사과가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는 어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사회적 장치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영화 후반부 형사인 오유진은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라고 일갈한다.

 

콜센터 노동과 특성화고 문제, 사고이후에도 반복되는 노동문제, 그러면서도 정작 이 같은 경쟁을 부추긴 원청의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일으켰다. 영화가 계기가 되어 현장실습 제도 개선, 기업의 책임 강화,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 LG유플러스 용산 사옥 [사진=메가경제]

 

허환주 기자는 이 장면을 보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원청은 끝까지 노코멘트였다.”

 

한편 LG유플러스는 "성명서 등을 통해 밝히지는 않았지만, 당시 언론에는 죄송할 따름이다.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고인과 유족에게 사과를 표명했다고 메가경제에 밝혔다.   

 

▲ "막을 수 있었잖아! 왜 보고만 있었어" 원청 등 소희를 둘러싼 어른들을 향한 오유진의 분노가 끝까지 여운을 남겼던 영화 '다음소희'. [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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