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10월 2층 벽돌 조 부산역이 준공되어, 1층은 역무실, 2층은 호텔로 지어져 1912년 7월 부산 스테이션호텔이 개업하여, 일본에서 건너와 호텔에서 숙박 후 대륙여행을 하려는 섬나라 민족의 열망이 담겼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 ▲ 1953년 11월 부산 대화재 현장 이러한 부산역 일대는 1950년 북괴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중 인민군이 점령하지 못했던 지역으로 피난민이 많았던 지역으로 부산으로 내려왔던 정부가 1953년 7월 휴전협정으로 서울로 복귀 4개월이 지난 11월 27일 화재가 발생하여 부산역사는 전소되었다. | ▲부산~신찡 간 열차 행선표 1911년 11월 1일 압록강 철교가 준공됨에 따라 남대문을 출발한 열차는 중국 신찡(新京 지금의 창춘長春) 까지, 주 3회의 급행열차의 운행이 시작된 후 1912년 6월 15일부터는 부산~신찡 간 직통 급행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1905년 9월 11일부터 부산항~ 일본 시모노세키항 간 13시간에 걸쳐 운행되던 부관연락선이 화·목·토요일 주 3회의 운항 소요 시간이 9시간 30분으로 단축되었다.
| ▲ 부산잔교역 전경과 열차 시각표 1913년 4월 1일 부산 잔교(棧橋)가 준공되고 잔교역이 생기면서 열차는 잔교역까지 연장 운행되어 한쪽은 열차 승강장으로, 반대편은 부관연락선 승선장으로 사용되었으며, 1935년 열차시각표에서 특이한 점은 부산⇒경성행 열차가 하행열차, 경성⇒부산행 열차가 상행열차로 표기되어 당시 일본 쪽을 상행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열차는 부산역 착·발 열차와 부산잔교역 착·발 열차로 구분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1943년 12월 부산역 명칭을 부산부두역으로 변경하였다가 1945년 6월 부산역으로 환원하기도 하였다. | | ▲손기정선수 도쿄~베를린 승차·선권 일본인들에게 부산역이 소중했던 사유를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의 승선·승차표에서도 찾아보면, 당시 도쿄에서 훈련을 마친 후 배편으로는 베를린까지 50여 일이 소요되는 거리를 부산에서 열차편으로 20여일 만에 도착하여 현지 적응훈련까지 마치고 금메달까지 획득한 사실이 잘 증명해준다. 필자가 철도박물관에 근무하던 2005년 8월 일본~부산 간 해저터널의 필요성 홍보를 위한 전시공간 마련을 위하여 방문한 일본 한일터널연구회 히라노아쓰시(平野敦士) 사무차장에게 일본 정부가 나서야 할 사안이 아니냐는 질문에, 한국인의 반일 감정 때문에 정부 아닌 민간단체가 수년간 추진하고 있다는 대답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 ▲1969년(상)과 2003년(하)의 부산역 1965년 11월 부산역은 신축공사를 위해 초량역과 함께 부산진역에 통합된 후 1966년 4월 1일 착공하여 1969년 6월 10일 준공되면서 신축역사로 이전한 후 현재의 역사는 경부고속철도 개통에 맞추어 2003년 9월 증·개축한 건물이다. | ▲ 부산유라시아플랫홈(BE-Platform) 2019년 9월 광장에 ‘부산유라시아플랫홈(BE-Platform)’이 조성되어 부산 도시재생 박람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 후 콘텐츠 운영공간이 필요한 단체나 기업체 또는 일반 시민에게 대관하여 각종 전시와 교육 등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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