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재천 칼럼] 허가된 신약과 성공한 신약은 다르다
K-신약 27년, 이제는 '개수'보다 '시장 생존'을 봐야 한다
김민준 기자
kmj6339@megaeconomy.co.kr | 2026-09-29 14:42:22
[메가경제=김민준 기자] 국산 신약이 1999년 첫발을 내디딘 지 27년이 됐다. 국내 제약산업이 제네릭 중심 구조에서 출발해 신약 연구개발에 도전해 왔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최근에는 신약 품목 수와 생산액이 늘면서 국내 신약개발 역량이 축적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7년이라는 시간에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의미가 있다. 수많은 도전과 실패, 시행착오를 거치며 연구개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해 온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노력은 충분히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신약이 몇 개 허가됐는가가 아니라, 허가된 신약 가운데 실제 시장에서 살아남은 신약은 얼마나 되는가.
최근 거론되는 K-신약의 성과와 생산액 7000억원 돌파는 의미 있는 숫자다. 하지만 생산액 증가는 생산 규모를 보여줄 뿐 글로벌 경쟁력과 기업 수익성, 연구개발비 회수, 환자의 치료 접근성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숫자를 선택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더 중요하다. 성과를 인정하는 것과 그 성과를 산업의 최종적인 성공으로 해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듣기 좋은 숫자만 바라보는 순간 숫자는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될 수 있다.
신약개발은 허가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허가 이후부터 시장의 냉정한 검증이 시작된다.
신약은 보험등재와 약가 결정을 거쳐 실제 의료현장에서 처방되고 환자에게 사용돼야 한다. 이를 통해 매출과 수익이 발생하고, 기업은 장기간 투입한 연구개발비를 회수해야 한다. 그 자본이 다시 다음 신약개발에 투입될 때 지속 가능한 신약개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신약개발의 성공을 연구개발과 임상시험, 허가만으로 규정해서는 부족하다. 연구개발에서 임상, 허가, 보험등재, 약가, 처방, 매출, 투자회수와 재투자로 이어지는 전체 가치사슬을 봐야 한다.
국산 1호 신약 선플라주의 생산 중단, 시벡스트로의 국내 시장 철수, 인보사의 품목허가 취소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신약으로 허가받았다는 사실과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의약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특히 약가는 신약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이 환자에게 실제 사용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이라는 거대한 공적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
약가는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연구개발비를 회수하고 다음 신약에 재투자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산업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높은 약가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환자의 접근성도 중요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혁신에 대한 적정한 보상과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이 균형을 이루는 구조다.
신약산업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국산 신약이 몇 개인지가 아니라 그중 몇 개가 보험시장에 진입했는지, 얼마나 많은 환자에게 처방되는지, 국내외에서 어느 정도 매출을 올리는지, 기업이 연구개발비를 회수하고 그 수익을 다시 신약개발에 투자하는지를 봐야 한다.
글로벌 시장도 마찬가지다.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과 글로벌 신약으로 성공했다는 사실은 다르다. 임상 단계의 기술수출과 글로벌 허가, 상업화, 매출 발생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따라서 K-신약을 평가하는 언어도 바뀌어야 한다. 몇 호 신약, 몇 조원 기술수출, 몇 개 파이프라인이라는 숫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환자에게 얼마나 사용됐는지, 시장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는지, 투자금을 회수했는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신약개발은 연구실에서 완성되는 단일 프로젝트가 아니다. 과학과 임상, 규제, 제조, 보험, 약가, 자본, 사업개발, 시장이 연결되는 종합적인 산업활동이다. 어느 한 단계의 성과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정부와 기업이 신약개발을 국가적 산업정책으로 추진한다면 산업 보도의 기준도 한 단계 높아져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제시하는 성과를 전달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성과가 시장과 환자에게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국산 신약 27년은 실패의 역사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연구개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것은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고진감래의 다음 단계에는 냉정한 자기평가가 필요하다.
성과를 인정하되 성과에 취하지 않는 것, 숫자를 보되 숫자에 속지 않는 것. 그것이 이제 K-신약에 필요한 자세다.
허가된 신약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신약의 시대로 갈 수 있는가.
K-신약의 다음 경쟁력은 신약의 ‘개수’가 아니라 시장 생존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환자에게 실제로 투여되고, 건강보험 안에서 지속 가능하며, 그 성과가 다시 신약개발 투자로 이어지는 신약. 그것이 진정한 K-신약의 성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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