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재천 칼럼] 상폐 위기 제약바이오…기업 키울 것인가, 산업 키울 것인가②

기술이전·투자 규모의 착시…이제 '성공의 질' 따질 때

김민준 기자

kmj6339@megaeconomy.co.kr | 2026-09-30 11:18:37

[메가경제=김민준 기자] 숫자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숫자의 의미까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제약·바이오산업에서 특히 그렇다. 매출이 늘었다고 반드시 좋은 기업은 아니고, 적자를 낸다고 반드시 경쟁력이 없는 기업도 아니다. 수조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 역시 마찬가지다. 계약 규모만으로 기업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 여재천 가톨릭대학교 의생명과학과 교수.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바이오기업들이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은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해왔는가’다.

 

매출과 영업손실, 부채비율과 자본잠식률은 중요한 지표다. 그렇다고 이 숫자만으로 바이오기업의 경쟁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

 

현재 적자라도 글로벌 임상에서 의미 있는 유효성을 입증한 기업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매출이 늘어도 핵심 파이프라인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바이오기업은 과학적 가치, 임상적 가치, 사업적 가치, 재무적 지속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한다. 이 네 가지가 연결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기업가치가 만들어진다.

 

기술이전도 마찬가지다. 수천억 원, 수조 원 규모의 계약이 곧 같은 규모의 매출과 이익을 뜻하지는 않는다. 계약금과 마일스톤, 로열티를 나눠 봐야 한다. 상당 부분은 임상 진전과 허가, 판매 성과 등을 전제로 한 미래의 조건부 가치일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얼마짜리 계약인가’가 아니다. 어떤 조건이 붙어 있는지, 개발 단계는 어디까지 왔는지, 실제 이행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결국 현금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래서 제약·바이오 시장에는 전문적인 검증이 더 필요하다. 임상시험을 이해하려면 의학과 약리학, 통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기업가치를 판단하려면 회계와 재무, 시장구조, 보험급여와 약가제도까지 함께 봐야 한다.

 

성공 가능성만 묻는 시장도 위험하다. 실패 가능성은 무엇인지, 경쟁자는 누구인지, 임상적 차별성이 있는지, 허가 이후 실제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험급여와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가능성만 강조하고 불확실성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석보다 기대에 가깝다.

 

정부 정책도 이제 기업 숫자 세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봐야 할 것은 ‘성공의 질’이다.

 

신약개발기업 수와 벤처투자 규모, 연구개발비가 늘었다고 산업 경쟁력이 함께 높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허가받은 신약은 몇 개인지, 그중 환자에게 투여되는 신약은 얼마나 되는지, 보험급여를 통해 치료 접근성을 높였는지, 신약에서 창출한 수익이 다시 연구개발로 이어지는지를 살펴야 한다.

 

국가가 만들어야 할 것은 제약·바이오기업의 숫자를 늘리는 시스템이 아니다. 좋은 신약이 탄생하고 시장에서 검증돼 환자에게 전달되고, 그 성과가 다시 연구개발로 이어지는 산업 시스템이다.

 

이번 14개 기업의 상장폐지 위기는 그래서 하나의 경고다. 상장폐지 자체가 시장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을 퇴출하는 것은 자본시장의 규율 기능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전이다. 어떤 위험 신호가 있었는지, 기업은 이를 충분히 설명했는지, 투자자와 시장은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K-제약·바이오의 다음 10년은 선별과 검증에서 시작해야 한다. 모든 기업을 지원할 필요도 없고, 모든 파이프라인이 같은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다. 모든 기술이전 계약이 성공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자본시장은 기업의 기술력과 재무건전성을 함께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기업도 자신의 기술 경쟁력과 자금조달 능력을 현실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 있는 기업이 성장하고 투자자가 보호받으며 산업 전체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신약개발은 꿈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은 꿈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연구개발에서 임상으로, 임상에서 허가로, 허가에서 보험급여와 실제 처방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과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현금흐름과 다시 연구개발 투자로 연결돼야 한다.

 

결국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제약·바이오기업을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제약·바이오산업을 키우고 있는가. 그 답은 기업 수나 투자 규모가 아니라 환자에게 전달된 신약과 시장에서 만들어진 지속 가능한 성과로 증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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