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세대 이하 정비권 자치구 이양 추진에…서울시 “오히려 사업 지연 우려”
당정, 소규모 재개발·재건축 인허가 기간 단축 추진
서울시 “실효성 제한적”…전문인력·심의 기준 편차 우려
정태현 기자
jth1992@magaeconomy.co.kr | 2026-08-25 09:52:18
[메가경제=정태현 기자] 정부·여당이 서울의 500세대 이하 재개발·재건축 사업 관련 권한을 자치구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정비사업 인허가 체계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업 현장과 가까운 자치구가 관련 절차를 직접 처리하면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취지지만, 서울시는 실제 단축 효과가 제한적인 데다 자치구별 기준 차이로 사업 혼선이 커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25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지난 2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신속한 주택 공급을 위해 500세대 이하 재개발·재건축 관련 권한을 기초단체장에게 부여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관련 법안은 국회 논의를 거쳐 구체화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 정비사업 인허가 절차는 서울시와 자치구가 나눠 맡는다.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시행계획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은 자치구가 담당하고, 정비구역 지정과 사업시행 단계의 통합심의 등은 서울시 권한에 속한다.
당정은 서울 자치구들의 요구를 종합해 일정 규모 이하 사업의 권한을 이양하고 인허가 기간을 단축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정비구역 지정과 사업시행 단계 통합심의 가운데 어느 범위까지 넘길지는 향후 법안 논의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시는 권한 이양만으로 주택 공급이 획기적으로 늘거나 전체 사업 기간이 크게 줄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비구역 지정 이후에도 조합 설립과 사업시행계획 수립, 관리처분, 이주·철거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서울시가 담당하는 심의가 전체 사업을 지연시키는 핵심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24일 입장문을 통해 “서울의 정비사업 현장을 제대로 모르는 구호일 뿐 실효성이 떨어지는 조치”라며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시는 자치구별 행정 역량 차이도 문제로 제기했다. 사업시행 단계의 통합심의까지 자치구로 이양할 경우 관련 조직과 전문인력을 별도로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권한부터 넘어가면 심의가 빨라지기보다 오히려 보완 요구와 기관 간 협의 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정비계획 기준이 자치구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쟁점이다. 서울시는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도로와 공원,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지만 자치구 단위로 구역을 지정하면 광역 도시계획과의 정합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치구 경계에 걸친 사업장에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거나, 서울시 심의를 피하기 위해 사업구역을 500세대 이하로 나누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용도지역과 공공기여 기준이 지역별로 달라질 경우 특혜 논란이나 주민 간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반면 권한 이양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서울시로 심의가 집중된 현재 구조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정 규모 이하 사업은 자치구가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해 사업장별 특성과 주민 요구를 신속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다.
관건은 서울시 심의가 실제 정비사업 지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다. 정비업계에서는 행정 심의뿐 아니라 사업성 부족과 주민 갈등, 공사비 상승, 조합원 지위 양도 및 대출 규제 등이 사업 속도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권한을 옮기는 것만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정이 추진할 법안의 세부 내용도 아직 확인해야 한다. 이양 대상이 정비구역 지정 권한에 한정되는지, 사업시행 단계의 통합심의까지 포함하는지에 따라 현장에 미칠 영향이 달라진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정비사업의 사업 기간을 단축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자치구별 인허가 기준이 달라질 경우 사업성 검토 일정 등을 예측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여당과 서울시가 주택 공급 확대라는 목표에는 뜻을 같이하면서도 정비사업 권한 배분을 놓고 상반된 판단을 내놓은 만큼 향후 입법 과정에서는 실제 기간 단축 효과와 자치구의 행정 역량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메가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