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제지, 30년간 담합 9번에 과징금 1900억…'존경받는 기업' 간판 무색

공중전화·가명 쓰며 담합한 한솔제지, 1425억 과징금은 리니언시로 '전액 면제'
한창민 의원 “1996년 이후 9차례 적발”…주사위로 가격 인상 순서까지?
한경록 대표, 고개 숙였지만…피해 규모·보상 계획은 ‘안갯속’

주영래 기자

leon77j@naver.com | 2026-10-22 09:02:52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한솔제지가 지난 30년간 아홉 차례 담합을 반복해 온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누적 과징금은 1900억원을 넘는다. 담합 과정에서 공중전화와 가명까지 동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기업 윤리와 내부통제 시스템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한솔제지는 이처럼 상습적으로 담합에 연루되는 동안에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ESG 경영 우수기업'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내세워 온 것으로 확인됐다. 위법 행위의 반복과 기업 이미지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회 정무위 종합감사에 출석한 한경록대표가 한창민의원의 질의를 받고있다. [사진=AI생성]
21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감사에서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한솔제지의 반복적 담합과 자진신고 감면제도(리니언시)를 통한 과징금 면제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한 의원은 실질적인 피해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한 의원은 “1996년부터 올해까지 아홉 차례, 30년간 3년에 한 번꼴로 담합이 적발됐다”고 지적했다. 이 기간 부과된 과징금은 1900억원이 넘고, 2007년부터 2013년까지는 여러 품목의 담합이 겹치면서 6년 넘게 위법 행위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담합이 일회성 일탈이 아닌 구조적 관행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한솔제지의 준법경영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을 키우는 대목이다.

◆ 공중전화·식당 전화에 가명 연락처…주사위로 인상 순서 결정

수법도 갈수록 은밀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한솔제지를 비롯한 제지업체들은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인쇄용지 가격 인상을 담합하며 60차례 이상 접촉했다.

적발을 피하려는 시도도 집요했다. 일부 관계자는 휴대전화 대신 공중전화나 식당 전화를 이용했고, 연락처는 별도 종이에 가명이나 이니셜로 관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거래처에 가격 인상을 통보하는 순서마저 주사위 등으로 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거래처의 반발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그 결과 인쇄용지 가격은 약 4년간 71% 올랐고, 인상 부담은 고스란히 출판·인쇄업체와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 '존경받는 기업' 22년 연속 내세우면서…수상 주체는 답 못해

대외 홍보와 실제 경영 행태의 괴리도 국감에서 거론됐다. 한솔제지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22년 연속 선정, 글로벌 ESG 평가기관 에코바디스 4년 연속 플래티넘 등급 획득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국감에서 한솔제지 측은 관련 수상 주체를 묻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홈페이지 홍보 문구 삭제 여부에 대해서도 "내부 검토 후 조치하겠다"는 취지로 답하는 데 그쳤다.

ESG 경영이 친환경 활동과 사회공헌에 그치지 않고 공정거래와 법규 준수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반복적 담합은 한솔제지 윤리경영의 실효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요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425억 과징금 '전액 면제'…피해보상은 "다시 살펴보겠다"


과징금 면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공정위는 지난 4월 한솔제지 등 제지업체 6곳에 인쇄용지 가격 담합 혐의로 총 33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이 가운데 한솔제지 몫은 1425억8000만원이었다. 그러나 한솔제지는 리니언시를 적용받아 이를 전액 면제받았다.

한 의원은 한솔제지가 올해 반기보고서에 과징금 면제 사실을 공시한 점을 언급하며 "영세한 출판업계와 인쇄업체를 어렵게 만들고도 피해를 외면하고 있다"며 "피해 보상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가 없다"고 질타했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뒤 자진신고한 기업이 과징금은 물론 시정조치까지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 구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한경록 한솔제지 대표는 "이번 담합으로 심려를 끼쳐드리고 피해를 입으신 고객과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피해보상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절차를 다시 살펴보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피해 규모 산정과 보상 방안, 이행 일정은 이날도 제시되지 않았다. 4월 제재 당시에도 한솔제지는 공식 사과와 함께 내부통제 강화, 이상 거래 상시 모니터링, 임직원 교육 확대 등 재발 방지책을 약속했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피해자가 체감할 만한 후속 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 공정위도 "제도 개선 필요"…리니언시 '면죄부' 논란

공정위 역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인정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리니언시 개선을 추진 중이며 관련 법안도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과거 담합 과징금 수준이 낮았다며, 제재가 부당이득을 충분히 웃돌아야 사전 억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피해 기업의 소송 부담을 덜기 위한 피해구제기금 필요성도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리니언시가 상습 담합 기업의 '면죄부'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장 먼저 자진신고하는 기업이 과징금을 전액 면제받는 구조에서는, 30년간 담합을 반복해도 제재를 피할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솔제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존경받는 기업'이라는 외부 평가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반복되는 담합을 끊고 피해 기업에 실질적인 보상안을 내놓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면서 “반복적으로 시장질서를 훼손하고도 과징금을 면제받은 기업이 피해구제에 소극적이라면 윤리경영 홍보 역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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