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덴마크는 14일이면 심사”…한국 임상시험, 글로벌 '속도전'에 뒤처지나

英 12월부터 저위험 1상 심사 14일로 단축…덴마크는 이미 시행·중국도 속도전
한국 임상시험 점유율 6위로 하락…식약처 제도 개선 검토에도 구체적 일정 '안갯속'

주영래 기자

leon77j@naver.com | 2026-10-14 09:01:39

[메가경제=주영래 기자]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신약 개발의 핵심 단계인 임상시험 유치 경쟁이 규제 승인 속도전으로 확산하고 있다. 영국과 덴마크가 임상 1상 심사 기간을 14일로 단축하고 중국도 승인 절차 개선에 나서면서, 국내 임상시험 경쟁력에도 경고등이 켜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한국의 글로벌 임상시험 점유율 순위가 하락한 상황에서 주요국이 신속한 승인 절차를 앞세워 글로벌 제약사의 임상시험을 유치하고 있어 국내 임상시험수탁기관(CRO)과 임상 전문병원의 경쟁력 확보가 과제로 떠올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단축 수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  임상시험 유치 경쟁이 규제 승인 속도전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진=AI]


14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은 지난 9월 30일 임상 1상 신청 심사 기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하는 프로그램의 가이드라인을 갱신했다.
영국은 올해 3월 30일부터 심사 기간을 28일로 단축한 데 이어 6월 29일 21일, 9월 28일 18일로 줄였다. 오는 12월 28일부터는 심사 기간을 14일까지 단축할 예정이다.


다만 모든 임상시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 내 건강한 성인 자원자를 대상으로 하는 저위험 임상 1상이 대상이다. 환자 대상 시험이나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임상시험까지 일괄적으로 승인 기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영국이 심사 기간 단축에 나선 것은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기업의 초기 임상시험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력 확보 차원으로 풀이된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 1상은 후보물질의 안전성과 약물 특성 등을 확인하는 초기 단계다. 임상시험 승인 기간이 길어지면 연구 일정과 인력 운영, 후속 임상시험 준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들은 임상시험 수행 국가를 선택할 때 의료 인프라와 전문인력, 비용뿐 아니라 규제 승인 속도와 일정의 예측 가능성도 주요 기준으로 고려한다.


영국의 심사 기간 단축이 국내 제약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제약사의 임상시험 수행 국가 선택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국가들도 승인 절차 단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덴마크 의약품청은 지난해 8월 14일부터 자국에서만 진행하는 단일국가 임상 1상 및 1·2상 신청에 대해 14일 이내 승인 여부를 통보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총국(NMPA) 역시 신약 임상시험 승인 대기기간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방안이 확정되면 일정 기간 규제당국의 이의가 없을 경우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승인 절차가 개선될 전망이다.


주요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글로벌 신약 개발 시장에서 임상시험 유치가 중요한 산업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 글로벌 제약사들은 임상시험 승인부터 환자 모집, 시험 수행, 결과 확보까지 개발 일정 전반을 고려해 임상 수행 국가를 결정한다. 규제 승인 절차가 신속하고 예측 가능할수록 초기 임상시험을 유치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글로벌 임상시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바이오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글로벌 임상시험 점유율 순위는 전년보다 두 계단 하락한 6위를 기록했다. 도시별 임상시험 순위에서도 기존 1위였던 서울이 중국 베이징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다만 순위 하락이 국내 임상시험 승인 기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가별 신약 개발 투자와 임상 인프라, 환자 모집 환경, 연구비 지원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요국이 규제 승인 절차 단축에 나서는 상황에서 국내 제도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점검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임상시험 승인 과정에서는 동물독성시험과 안전성·유효성 관련 비임상 자료 등을 사전에 제출해야 하는 구조가 심사 효율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신약 후보물질의 인체 투여에 앞서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자료 제출과 검토 절차가 과도하게 복잡하거나 중복된다면 임상 착수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가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임상 1상 수행 기관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승인 기간의 차이는 국가별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CRO와 임상시험 전문병원, 초기 임상 전문기관 역시 글로벌 임상 수주 경쟁에서 승인 속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해외 규제당국의 심사 기간 단축이 실제로 국내 임상시험 수주 감소로 이어졌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은 만큼, 직접적인 산업 피해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식약처도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식약처는 올해 임상시험 승인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정책연구를 통해 국내외 승인 절차를 비교·분석하고 심사 기간 단축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해 업계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외 제도 운영 현황을 비교·분석하는 정책연구를 수행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라 필요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임상시험 승인 기간을 구체적으로 얼마나 단축할지, 새로운 제도를 언제 시행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식약처가 추진 중인 신약 허가 심사 기간을 기존 420일에서 295일로 줄이는 방안도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임상시험계획 승인 기간 단축과는 구분되는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임상시험 유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규제 승인 절차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지만, 심사 기간 단축이 안전성 검증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영국 역시 모든 임상시험에 일괄적으로 신속 심사를 적용하는 대신 건강한 성인 대상 저위험 임상 1상부터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설정했다.


국내에서도 시험 참여자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자료 제출 부담과 중복 검토를 줄이는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글로벌 임상시험 유치 경쟁의 핵심은 단순히 승인 기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안전성과 심사 효율성, 제도 운영의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있다는 평가다.


K-바이오 산업이 신약 개발 역량을 넘어 글로벌 임상시험 거점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규제 환경 변화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과 덴마크에 이어 중국까지 승인 절차 단축에 나선 가운데 식약처의 제도 개선이 실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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