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취임…"관습적 이론 넘어 실천으로 ‘K-중앙은행’ 새 시대 연다"
21일 취임사 일성…"중앙은행 역사는 경험이 이론이 된 과정, 우리만의 실천적 해법 찾을 것"
4대 핵심 과제: 유연한 물가 관리·금융안정 조기경보·원화 국제화·통화정책과 맞물린 구조개혁
"구조적 요인은 통화정책의 중요한 일부"… 싱크탱크로서의 한은 위상 강화 및 조직 혁신 예고
박성태 기자
pst2622@naver.com | 2026-04-22 06:32:55
[메가경제=박성태 기자] 세계적 금융 석학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1일 공식 취임하며 4년 임기의 여정을 시작했다. 신 총재는 취임사에서 현재 우리 경제가 마주한 대내외 여건을 중동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과 AI 기술 혁명이 맞물린 '복합적 대전환기'로 규정했다.
특히 그는 "중앙은행의 역사는 환경 변화에 부응해 진화해온 과정"이라며, 물가와 성장을 넘어 금융 안정과 국가 구조개혁까지 아우르는 '중앙은행의 새로운 진화'를 예고했다.
신 총재는 취임사 전반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역사적 맥락에서 재조명했다. 17세기 유럽의 예금은행에서 시작해 대공황과 스태그플레이션을 거치며 진화해온 과정을 짚으며, "중앙은행의 변천은 정립된 이론을 뒤따른 결과가 아니라, 경험이 이론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고 역설했다.
이는 현재의 복합 위기 속에서 기존 경제학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 경제만의 특수성을 반영한 실천적인 정책 운용을 통해 새로운 이론적 해답을 써 내려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는 향후 4년간 추진할 핵심 과제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중동발 공급 충격에 대응한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와 금융 안정을 동시에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정책 변수 간 복잡한 상충관계를 완화키 위해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강화하고 시장과의 양방향 소통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약속했다.
둘째로 신 총재는 '금융안정'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은행과 비은행, 국내외 부문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기존 건전성 지표만으로는 위기를 포착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시장 가격지표를 활용한 조기경보 기능 강화와 비은행 부문에 대한 정보 접근성 제고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셋째 과제인 '원화 국제화와 디지털 혁신'은 신 총재의 글로벌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외환시장의 24시간 개장과 역외 원화결제 시스템 구축을 통해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예금토큰의 활용도를 높이는 '프로젝트 한강' 및 '아고라 프로젝트' 등 디지털 통화제도 혁신을 가속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원화 국제화와 지급결제 혁신, 거시건전성 체계가 ‘삼각 축’을 이루는 입체적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취임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대목은 넷째 과제로 제시된 '우리 경제 구조개혁에 대한 한은의 적극적 역할론'이다. 신 총재는 인구구조 변화, 양극화 심화, 부동산 및 가계부채 문제 등 구조적 결함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직격했다.
그는 "구조적 요인은 통화정책과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통화정책 운영의 중요한 일부"라고 정의했다. 경제 구조가 달라지면 경제주체들의 인식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기고, 이는 통화정책의 파급 경로 자체를 왜곡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앞으로 구조적 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정책 제언을 통해 우리 경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한은이 단순한 금리 결정 기구를 넘어 국가 경제 전반의 '최상위 싱크탱크'로서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선언이다.
내부 경영 측면에서도 신 총재는 "큰 조직 속의 작은 개인이 아니라, '큰 개인'들이 모여 '더 큰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며 구성원 개개인의 전문성 강화를 최우선 가치로 내걸었다.
부서 간 경계를 허물어 종합적 시각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고, 조사연구와 정책이 선순환하는 유기적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K-점도표'와 같은 한국의 정책 경험을 국제사회(BIS, IMF 등) 담론 형성에 적극 투입해 한국은행이 글로벌 논의의 중심에 서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신 총재의 취임사에 대해 "중앙은행의 역할을 국가 구조개혁과 디지털 주권의 영역까지 확장했다"고 평가했다. 또, 시중은행 자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원화 국제화와 비은행 모니터링 강화는 시장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과제"라면서도 "석학의 이론적 청사진이 실물 경제의 이해관계와 부딪힐 때 어떤 실무적 유연함을 보여줄지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신현송 호(號)의 출범은 물가라는 외나무다리를 건너 금융 안정과 구조적 혁신이라는 광활한 영토로 나아가겠다는 한국은행의 선전포고로 볼 수 있다. 4월 21일 한국 경제는 과거의 관성을 뒤로하고 미증유(未曾有)의 금융 패러다임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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